“소송 경과를 보면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방어권 보장을 위해 따로 법정 구속은 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2월 8일 서울고법 법정. 2심에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 대표에게 재판부가 ‘방어권 보장’을 위해 취한 이 조치는 엉뚱하게도 법원발(發) 정계 개편으로 이어졌다. 그는 두 달 뒤 총선에서 전국 평균득표율 24.2%, 의석수 12석의 제3당 대표가 됐다. ‘청와대의 울산 선거 개입’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황운하 의원도 당선자 명단에 올라갔다. ‘김학의 불법출금’으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2심 재판 중인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장, ‘윤석열 찍어내기’ 감찰로 공수처 수사를 받는 박은정 전 부장검사도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한 법조인은 “당혹스럽다. 거의 공포에 가까울 정도”라고 했다. 유권자가 선택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실형 선고를 받은 피고인까지 민의를 대변하게끔 법원이 도와준 꼴이 됐기 때문이다. 옥중 창당, 옥중 출마를 감행한 송영길 전 대표가 자신은 17%, 당은 0.43%밖에 득표하지 못한 것을 보면 조국혁신당 돌풍의 상당 부분은 법원의 불구속 조치에 힘입은 것이다.
실형 선고를 받은 피고인이 구치소 대신 국회에 입성하는 모습은 사법 시스템에 대한 믿음마저 무너뜨린다. 형(刑)이 확정되면 구속되겠지만 재판 지체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그 시기를 기약할 수도 없다.
법원이 이런 결과를 의도하거나 예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 개정된 예규에 따르면 실형 선고를 할 때도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법정 구속을 하도록 했다. 예규를 따랐으니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실형 선고는 재판 결과 유죄가 인정되고 죄질도 나쁘다는 법원의 판단이다. 절차 진행을 위한 수사 단계의 구속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 현직 판사는 “실형 선고는 그 자체로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를 높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법정 구속을 원칙으로 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게다가 조국 대표는 작년 11월부터 ‘비(非)법률적 명예 회복’을 하겠다며 총선 출마를 시사해 왔다. 불구속 조치가 방어권 행사보다는 정치 활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했다. 서류 심리로 이뤄지는 대법원 재판은 방어권 보장의 필요성도 떨어진다. 재판부가 이런 부분까지 면밀하게 고려했을까.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지지자들의 비난은 피하는 ‘안전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조 대표의 대법원 재판은 거대 야당의 돌풍 앞에서 대법원이 사법 독립을 지킬 수 있는지를 가늠할 지표가 될 것이다. 벌써부터 조 대표와 특정 대법관의 인적 관계를 들어 재판이 지체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추락한 사법 신뢰는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갈 것이다. 의도치 않은 ‘법원발 정계 개편’이 제때 수습되는지, 조국 대법원 재판의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