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년 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은이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로부터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한국의 기준금리를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추격 인상한 뒤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였다. 미 연준의 금리 향방이 어떻게 한은 기준금리 결정의 지침이 될 수 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 상황이 항상 똑같은 ‘2인 3각’ 경기도 아니고, 금리 수준이 묶여 있어야 하는 법은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올해 4~5월 들어 미국의 경기 지표와 달리 한국의 지표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반도체·기계 등 특정 산업이 버텨주던 경기가 예전처럼 골목 곳곳에 온기를 뿜어내지 않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수 진작을 위한 기준금리 인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그 효과가 9~12개월 지나야 나타난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한은은 미국이 금리 인하를 늦추고 있다며 꿈쩍하지 않았다.

기준금리를 설립 이후 최장 기간인 19개월 묶어 놓으면서 한은은 행동보다는 훈수에 중점을 뒀다. ‘지역 거점 도시 만들어 수도권 집중을 막자’ ‘수입을 확대해 과일 물가 잡자’ ‘명문대 입시에 지역 학생 숫자별 할당 정원제를 실시하자’는 거대 담론에 집중했다.

지난 27일이 압권이었다. 한은의 이달 금리 동결 이후 “내수 진작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는 대통령실의 반응에 이 총재는 반격했다. “현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 “왜 이런 늪에 빠졌는지 성찰이 부족하다” “금리 동결은 경각심을 주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했다. 가계 부채, 부동산, 연금·노동 개혁과 같은 어려운 숙제는 미뤄 놓고 손쉽게 한은의 통화정책으로 위기를 임시방편으로 모면하려 하면 안 된다고 꾸짖었다.

그러나 이 총재가 가계 빚을 우려했다면 지난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대출 규제를 9월로 미루는 용산과 당국의 결정에 대해 최고위 협의체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해야 했다는 반론이 나왔다. 금융 안정을 걱정했다면 각종 정책 대출 상품이 시장에 풀릴 때 이에 대한 우려를 제때 밝혔어야 했다는 말이 많다.

시장에서는 선제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던 한은이 집값이라는 외통수에 걸렸다고 보기도 한다. 미국 연준은 9월에 금리를 내릴 것이 확실하다. 0.25%포인트 인하냐, 0.5%포인트 인하냐가 글로벌 관전 포인트다.

연준에 뒤따라가는 현 추세라면 한은도 연내 금리 인하 확률이 높다. 한은의 걱정대로 금리 인하는 집값 상승을 부채질할 수밖에 없다. 한은이 10월에 금리를 인하하며 ‘정부가 그토록 바라던 금리를 내렸으니, 집값 상승 차단은 이제 정부의 몫’이라고 할지, 11월에 금리를 내리며 ‘한은은 그동안 필사적으로 방어했다’고 할지가 우리의 관전 포인트가 됐다. 이도 저도 국가 경제에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