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2022년 10월 동유럽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의 성소수자 클럽에서 19세 젊은이가 총기를 난사해 두 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7월에는 18세 용의자가 미국 뉴저지주의 에너지 시설을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우다 발각됐다. 지난달 튀르키예 도시 에스키셰히르의 모스크 부근에서는 사람들을 흉기로 찌르며 이 장면을 소셜미디어에 중계까지 한 18세 용의자가 붙잡혔다.

발생 지역도, 성격도 다르지만 이 세 범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특정 텔레그램 채널에 올라온 게시물과 동영상을 통해 극단적 백인우월주의에 심취한 10대들이 범행에 나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의 채널과 단체대화방을 운영하며 지구촌 곳곳에서 극단주의 범죄를 선동해온 운영자가 최근 미국 검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공소장을 보면 첨단 온라인 기술이 시간·공간의 한계를 초월해 흉기로 악용되는 현실이 드러나 있다.

세 건의 범죄를 선동한 텔레그램 채널 이름부터가 ‘테러리즘’과 ‘텔레그램’을 합성한 ‘테러그램(terrorgram)’이다. 운영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아이다호에 각각 거주하는 30대였다. 이들은 불특정다수가 모인 온라인 공간에 극단 이념과 범죄 매뉴얼을 전파했다. ‘화이트 테러’라는 이름의 24분짜리 동영상에서는 1968년부터 2021년까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저질렀던 각종 테러와 난동을 소개하면서 이들을 영웅으로 추켜세우고 뒤따를 것을 선동했다. ‘하드 리셋’이라는 디지털 인쇄물에서는 각종 폭발물을 만드는 방법 등을 소개했다. 주요 범행 대상 및 정보를 망라한 명단까지 공유했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텔레그램 대화방 게시물을 통해 극단주의에 심취해 범행에 나섰고 인명 살상 테러까지 벌인 것이다. 이들의 행각은 꼭 10년 전 상황과도 흡사하다. 2014년 시리아·이라크 영토 상당 부분을 점령하며 국가 수립까지 선포했던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소셜미디어 게시물과 동영상·디지털 출판물을 통해 서구사회를 증오하는 극단적 이념을 전파했고, IS의 선동에 세계 곳곳의 소외계층·사회 부적응 젊은이들이 자기 나라에서 자생적 테러를 일으켰다. 전대미문의 공포를 안겨줬던 이른바 ‘외로운 늑대 테러’였다. 선동 이념과 타깃만 바뀌었을 뿐 디지털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불특정 다수의 젊은이들을 극단주의로 물들여 테러리스트로 만든다는 수법은 빼닮았다.

익명·보안성이 뛰어나고 최대 20만명까지 대화방에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텔레그램이 범죄의 온상으로 악용된 국내외 사례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제2·제3의 텔레그램이 등장해 선동과 메시지로 국경을 뛰어넘는 테러와 폭동을 획책하는 일이 일상이 될 수도 있음을 이번 사례가 보여준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메신저의 범죄 도구화는 한국 사회에서도 이미 상수(常數)가 된 지 오래다. 더 정밀하고 포괄적인 통신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