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동 주미 대사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미국 새 정부와 핵연료 재처리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원전에서 쓰고 나온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핵무기 제조 물질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핵연료 재처리 권한이 없다. 이 때문에 정부가 원자력 협정 개정을 통해 ‘잠재적 핵 능력’ 확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외교부에서 조 대사의 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찾기 힘들다. 주미 대사관 측도 논란이 되자 “원론적 차원의 언급”이라고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방폐장(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도 시작을 못 했는데 재처리 권한을 얻는다 한들 그 시설은 어디에 둘 것이냐”고 했다. 의원들의 질의에 조 대사가 의례적 답변을 한 것일 뿐, 핵연료 재처리에 관한 사회적 합의도 없는 상황에서 ‘잠재적 핵 보유’ 담론은 아득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실제 북핵 위협이 고조될 때마다 자체 핵무장 찬성이 높다는 피상적 여론조사 외에 우리 사회가 핵연료 재처리 문제를 공론화해 본 적은 없다. 핵무기는커녕 원전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처분하는 방폐장법조차 아직까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원전 상위 10국 중 방폐장 건설 절차를 밟지 못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국내 원전의 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이 빠르면 5년 뒤부터 포화 상태가 돼 최악의 경우 원전 중단 우려까지 나오지만 22대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는 없다.

방폐장법이 통과돼도 주민 반발과 설득의 지난한 과정이 기다린다. 핀란드는 1983년 방폐장 부지 선정을 시작해 2001년 부지를 선정하고 2016년 건설 작업에 착수했다. 우리나라 역시 2003년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 유치 문제를 놓고 전북 부안에서 극심한 사회 갈등이 벌어졌다. 지하에 핵연료를 파묻는 방폐장도 이럴진대 화학 처리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핵연료 재처리 시설은 아직 우리 사회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문제다.

북핵 대응 차원으로 재처리 문제에 접근하는 것 역시 전략적 실책이라는 지적도 많다. 비핵보유국 중 재처리 권한을 가진 나라는 핵 통제가 느슨했던 1988년 미국과 협상한 일본이 유일하다. 그만큼 미국의 핵 비확산 의지가 강하다는 방증이다. 핵연료 재활용이 가능한 우라늄 농축을 앞세워 환경적 측면만 강조해도 재처리 권한을 얻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플루토늄부터 언급하며 핵무장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과연 효과적이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미 방위비 재협상을 단언하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재협상을 받고 재처리 권한을 얻는 ‘거래’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얼마큼 치밀한 전략적 사고가 전제된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익을 놓고 ‘희망 고문’만 길어질 뿐이다. 방폐장법부터 처리하며 사회적 합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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