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광주광역시에 있는 한 상호금융회사 지점에 돈 빌리겠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대부분 서울·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신축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잔금 대출을 받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시중은행보다 최고 2%포인트 더 낮은 연 4.2%인 금리가 매력적이었다. 이 지점은 대출자금으로 300억원을 준비했는데, 단 이틀 만에 동났다. 해당 회사에 금리를 그렇게 낮춰도 문제가 없는지 물었더니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신용이 확실해 돈 떼일 가능성이 낮다. 더 많이 대출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라고 했다.
수도권 거주자들이 지방의 2금융권 회사까지 ‘대출 쇼핑’에 나선 건 금융 당국의 ‘두더지 잡기(Whack-a-Mole)’식 대출 옥죄기가 한몫했다. 은행 대출이 늘어 가계부채가 증가하자, 금융 당국은 은행들을 압박했다. 그러자 은행들은 너도나도 비대면대출 등을 하지 않겠다고 항복했고, 대출 수요자들은 상호금융, 저축은행, 카드사 등으로 몰려갔다.
2금융권 회사들은 이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시중은행에서는 드문 4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을 내놓거나, 연 4% 초반대까지 금리를 낮추며 대출 영업에 열을 올렸다. 이로 인해 2금융권 가계대출은 10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2조7000억원이나 늘었다. 한쪽을 누르니 다른 한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금융 당국은 이제 부풀어오른 다른 한쪽도 마저 누르겠다며 2금융권을 압박하고 있다. 연일 2금융권 관계자들을 소집해 군기를 잡았고, 직접 금융사로 들어가 각종 서류를 뒤지고 있다. 이런 압박 때문에 만기 40년짜리 주담대 상품은 사라졌고, 대출모집인을 통한 주담대를 하지 않겠다고 백기를 든 회사도 등장했다.
물론 경제 안정을 위해 가계 부채 증가세를 억누를 필요는 있다. 하지만 당장 정치권이나 언론의 포화를 피하기 위해 무작정 금융회사들의 목을 조르며 ‘두더지 잡기’만 하는 건 정답이 되기 어렵다. 전방위적으로 대출을 막는 데만 급급하면 피해는 급전이 필요한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내 집 마련 꿈을 키워온 이들은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잔금을 못 치를까 봐 불안해서 잠 안 온다”고 하소연한다.
그뿐만 아니라 벼랑 끝에 내몰린 나머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서민들도 속출한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사금융 이용자는 최소 5만명대로 추산되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불법인지 알면서도 급전을 구할 방법이 없어 이용했다”고 한다.
금융 당국이 무작정 풍선의 이쪽저쪽을 눌러대며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가계 부채 관리 정책은 지양할 때가 됐다. 투기 세력은 발라내고 꼭 돈이 필요한 계층만 추려낸 뒤, 이들에게 감당 가능한 액수의 대출이 이뤄지도록 세심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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