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학자들은 예산 배분을 둘러싼 정치적 추태를 ‘로그롤링(Log-Rolling)’과 ‘포크배럴(Pork Barrel)’이란 비유로 설명한다. 로그롤링은 통나무 굴리기다. 이권이 결부된 법안을 관련 의원들이 담합해 통과시키는 행태를 묘사한다. 이번에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그랬다.
포크배럴은 돼지고기 통. 이권이나 정책 보조금을 얻으려고 몰려드는 정치인들 모습이 마치 농장주가 돼지고기 통에서 고기 한 조각 던져줄 때 모여드는 노예들 같다는 비아냥에서 나온 단어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1년 무분별한 복지 예산 증액 요구에 맞서 유식한 척 ‘포크배럴’을 언급했다가 여야(與野) 가릴 것 없이 “모욕적이다” “저질스럽다”면서 십자포화를 날려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정치인들 눈에 정부 예산은 ‘남의 돈(세금)’이다. 비단 정치인들 뿐이랴.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갈파한 대로 파렴치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는 상황은 “남의 돈을 남을 위해” 쓰는 경우다. 이럴 땐 비용이 얼마나 들든 관심이 없게 된다. 정부의 비효율을 꼬집은 대목이다. 다만 프리드먼은 “남의 돈을 자기를 위해 쓸 땐 비싸고 좋은 걸 챙긴다”고 지적했는데, 이 정부는 남의 돈을 자기(정치적 이익)를 위해 쓰는데도 굳이 비싸고 안 좋은 걸 고집하는 경향이 자주 보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먼도 놀랄 창의적인 발상이다.
이런 막무가내를 막아보고자 500억원 넘는 정부 사업에 대해선 예산을 터무니없이 낭비하는 건 아닌지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하도록 견제 장치를 걸어 놓았다. 김대중 정부 때 일이다. 이 빗장을 본격적으로 푼 건 이명박 정부였다. 4대강 사업을 하려고 예타 면제 범위를 대폭 넓혔다. 안보나 문화재 복원, 교육 시설 개·보수 등 특별한 사유만 면제 대상이었는데 이를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까지 포함시켰다. 당시만 해도 이를 맹렬하게 비난하던 현 정부 인사들은 나중에 이게 ‘굴러들어온 호박’이 될 줄 그땐 몰랐을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을 기어이 밀어붙이면서 이 정부는 예타 조사도 건너뛸 태세다. 예타 조사래봤자 법적 구속력이 거의 없는 권고 자료에 불과하고, 연구기관이 주문자 입맛대로 비용은 낮추고 편익을 높여 “손해는 아니다”라면서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일삼곤 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 것조차 거추장스러운 모양이다. 예타 면제 사업은 노무현 정부 10건 2조원에서 이명박 정부 때 88건 61조원 규모로 뛰었다. 박근혜 정부에선 85건 23조원으로 나름 자제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4년간 122건 96조원으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까지 늘렸다. 가덕도 신공항(국토교통부 추정 사업비 12조~28조원)을 추가하면 100조원을 돌파하는 건 시간문제다.
박민정 원광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해 한국자치행정학보에 실린 논문에서 피터 아란슨 전 에모리대 교수 등을 인용, “민주주의 사회에서 예산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승리를 극대화하기 위한 결정이며, 정부 예산은 가장 큰 정치력을 가진 사람들이 움켜잡는 거대한 지대(地代·Rent)”라고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2년 분석해보니 대규모 공공 사업을 지역에 유치한 정치인은 다음 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가덕도 신공항이 왜 필요한지 다 과학적인 꿍꿍이가 있었던 셈이다.
박 교수는 예타 면제에서 핵심 쟁점인 “국가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 조항은 반드시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대체 뭐가 ‘국가 정책적으로’ 필요한지 토론해서 구체적으로 못 박자는 얘기다. 엄청난 개선 효과를 기대하진 않지만 그 정도라도 해야 남의 돈을 놓고 아귀처럼 다투는 정치권 폭주(暴走)를 통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공복(公僕·노예)이 거리낌 없이 주인(국민) 곳간을 거덜내는 장면을 4년 내내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