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나라 장수 조괄은 중국 역사 최고의 반면교사 중 하나다. 그가 진나라에 맞서 싸운 장평대전에서 패하는 바람에 군졸 40만명 이상이 몰살했다. 30여 년 후 나라는 멸망했다. 조괄은 병법의 달인이었다. 기막힌 아이러니다. 맹장인 아버지 조사도 병법에선 어린 조괄을 당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조사는 아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전쟁은 사람이 목숨을 거는 것인데 괄이 너무 쉽게 전쟁을 말한다”고 했다. “괄을 장수로 삼으면 우리 군대는 파멸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은 현실이 됐다. 조괄은 종이 위에서 헛되이 병법을 논한다는 뜻의 사자성어 ‘지상담병(紙上談兵)’의 효시다.
현대 중국군은 이 교훈을 잊지 않고 있다. 시진핑 주석을 보고 그걸 알았다. 그는 지난 2월 지방 군부대를 시찰하며 “실전화 군사 훈련을 강화해 전쟁에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끊임없이 키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평균 두 달에 한번 부대를 시찰하며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고 한다.
인간의 우둔함 때문인지 사악한 위정자 때문인지 교훈의 망각은 반복된다. 동서고금 똑같다. 냉전 때 소련군 중 최강으로 우크라이나군이 꼽혔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이 나라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2014년 내전이 났다. 친러시아 반군이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무장 투쟁을 벌였다. 우크라이나군은 무력했다. 전투에서 이기지 못했고, 희생자는 늘었다. 군 전문가들이 분석해 보니 독립 이후 20년 넘게 실기동·사격 훈련을 한 대대급 부대가 거의 전무했다. 현재도 돈바스 상당 지역이 반군 차지다.
올해 전반기 한미 연합훈련이 끝났다. 병력·장비 동원 없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습이었다. 2018년 이후 이렇게 바뀌었다. 미군은 걱정이 태산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연합훈련이 컴퓨터 게임이 되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 한미 연합방위 능력에 차질이 생긴다고 했다. 비수처럼 꽂히는 말도 했다. “실탄 훈련을 하지 않으면 실전에서 부하들의 피를 부른다.”
강원도에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이 있다. 훈련부대가 대항군을 상대로 1·2·3 참호를 뚫고 고지를 점령하는 훈련을 한다. 산악 지대에서 각본 없이 실전 같은 훈련을 한다. 초기엔 1참호를 뚫는 부대가 거의 없었다. 병사들이 뻣뻣하게 서다니다 ‘사망 처리’ 됐다. 시간이 갈수록 훈련부대 전투력이 강해졌다. 1참호, 2참호를 넘어 3참호를 뚫는 부대도 나왔다. 13년 전 취재 때 함께 뛰어다니며 들은 얘기가 생생하다. “정말 놀라운 건 병사들 자세가 낮아졌다는 점이다. 생존 병사들이 많아졌다. 전투에서 이길 확률도 커졌다.” 훈련이란 이런 것이다. 나도 살고, 나라도 살린다.
대통령이 연초에 연합훈련 중단을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김정은이 싫어하니 하지 말자고 했다. 통일부 장관, 여권 국회의원 35명도 같은 말을 한다. 이제 연합훈련 때 실기동 훈련이 병행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정은이 다시 ‘허락’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 때 이길 딱 한 가지 방법은 평소 ‘실기동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적마저 존경했던 2차 대전 최고의 명장 롬멜은 “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군은 훈련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미 연합방위가 기본인데 우리만 훈련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손발 한번 맞춰보지 않은 축구 대표팀은 실전에서 대패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과신했다간 현대판 조괄이 될 수 있다.
유사시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엄청난 문제다. 게다가 확실한 건 우리와 미군 병사들 생존 확률이 ‘크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군 통수권이 완전히 길을 잃었다고 비판받아 마땅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