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에서 낙산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동쪽이 종로구 창신동이다. 일제강점기 때 채석장으로 쓴 돌산이 있는 지역인데, 광복 후 무허가 건물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동네가 만들어졌다. 돌산 절개지 주변으로 지은 지 수십년 된 다세대·연립주택이 빽빽하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좁은 골목, 가파른 계단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창신동 일부 지역이 지난달 말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민간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됐다. 신통기획은 오세훈 시장이 추진하는 민간 정비사업 활성화 정책이다. 이번 결정으로 서울 도심의 대표 ‘달동네’ 창신동 개발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박원순 전 시장이 붙인 ‘도시재생 1번지’라는 꼬리표를 떼고, 주민 주도의 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애초 창신동 일대는 뉴타운으로 개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3년 박원순 시장이 뉴타운 지정을 해제하고, 2014년 5월 서울의 1호 도시재생 선도구역으로 선포했다. 이후 1000억원 넘는 예산이 투입됐지만, 주민들이 간절히 원하던 열악한 주거 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 “담벼락에 그림 그리는 게 전부”라는 도시재생 사업 비판에 첫손으로 꼽히는 곳이 창신동이다. “적어도 소방차는 들어올 수 있게 해달라” “겨울엔 동파, 여름엔 악취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소연하던 주민들은 동네를 떠나고 있다. 작년 12월 기준 창신동 인구는 1만9377명. 도시재생 선도구역으로 지정된 7년 전보다 22%나 줄었다. 창신동에서 20년 넘게 살았다는 한 주민은 “도시재생으로 변한 건 사람들 얼굴의 주름살뿐”이라고 했다.

지난 몇 년 사이 창신동엔 ‘백남준 기념관’ ‘봉제역사관’ 같은 도시재생 거점 시설이 만들어졌다. 한 주민은 “동네 사람은 전혀 이용하지 않고, 도시재생 활동가라는 사람들이 세금 타 먹는 시설”이라고 말했다. 27억원을 들여 만든 ‘산마루 놀이터’도 도시재생 결과물이다. 놀이터 조성비로는 어마어마한 돈을 들였는데, 정작 뛰어노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창신동 인구 중 10세 미만 어린이는 3.5%로 서울 평균(6.1%)의 절반을 겨우 넘는다. 다시 말해, 서울에서 어린아이가 가장 적은 동네에 세금으로 으리으리한 놀이터를 지은 것이다.

이번 정부가 지난 5년 부동산 실정(失政)으로 고전한 데엔 도시재생도 한몫 거들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부동산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박원순 시장 때 서울연구원장을 맡아 도시재생 정책을 설계했다. 문 대통령의 핵심 부동산 공약 ‘도시재생 뉴딜’도 사실상 그의 작품이다. 해마다 10조원씩 투자해 전국 500곳의 노후 주거지를 재생한다고 했는데,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는 마당에 뭐가 달라졌는지 체감하는 국민이 드물다. 만약 문 대통령이 50조원으로 신도시 개발이든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든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에 공을 들였다면, 임기 중 서울 아파트 값이 배(倍) 넘게 뛰진 않았을 것이다.

미국 뉴욕의 새 랜드마크 ‘허드슨야드’, 일본 도쿄 중심부의 ‘롯폰기힐스’는 도심 고밀화를 목표로 전면적인 재개발을 단행한 도시재생 성공 사례다. 문재인 정부와 박원순 전 시장의 도시재생이 효과가 없었던 주요 원인은 ‘개발은 악(惡), 보존이 선(善)’이라는 고집 때문이다. 창신동처럼 기본적인 도시 인프라조차 갖추지 못한 지역의 주민에게 ‘동네를 보존하면서 예쁘게 가꾸자’고 하는 건 강제 철거보다 더 고통스러운 폭력이다. 이번 서울시 신통기획 후보지 선정 때 탈락한 창신동 나머지 지역에서도 주민 뜻에 따라 신속한 재개발 추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