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 위기감이 감돈다. 이재명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슬로건으로 ‘위기에 강한, 유능한 경제 대통령’을 추가했다. 처음엔 ‘이재명은 합니다’를 내걸었다가, 연초부터는 ‘앞으로 제대로, 나를 위해 이재명’을 써왔다. 이번이 세 번째인데 자신의 이름을 뺐다. 대신 ‘위기’를 호소했다. 민주당 선대위는 “하루 한 명에게 기호 1번을 호소하자”며 ‘111 캠페인’도 벌였다. 선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얘기다. 최근엔 “선거가 두렵다”는 민주당 의원도 만났다. 대선 후 곧바로 치러질 지방선거와 2년 뒤 총선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며 앞날을 걱정했다. 대선 후 문재인 대통령이 ‘화’를 피할 방법도 화제에 올랐다. 누구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이 정부 적폐 청산보다 몇 배 강한 사정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고, 누구는 “이재명 후보가 돼도 노무현 정부의 DJ 대북 송금 수사 때처럼 문 대통령에게 가혹할 수 있다”고 했다.
위기감은 뭔가 잘못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생긴다. 부동산 값 폭등, 탈원전, 김정은 비핵화 사기극 동조 등 이 정부 실정(失政)이 한둘이 아니지만, 위기의 상당 부분은 중도층 이반을 부른 민주당의 태도에 기인했다고 본다. ‘내로남불’이다.
이 후보가 문재인 정부 후계자를 부인하며 아무리 ‘이재명 정부’를 외쳐도 내로남불은 끝내 ‘차별화’되지 않는다. 민주당 이동학 청년 최고위원은 최근 당 선대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집 사지 말고 기다리라 해놓고 똘똘한 한 채를 챙기고, 특목고 없애자면서 자녀들은 과고·외고 보내고,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 뒤로는 특혜를 누렸다.” 정권 주류 ‘86그룹’을 겨냥한 말이다.
민주당의 내로남불이 심각한 것은 그것이 ‘사다리 걷어차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최고위원 말대로 여당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 챙길 것 다 챙기고 누릴 것 다 누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찼다. 공정한 입시와 취업 기회를 원한 청년, 내 집 한 채 갖고 싶던 서민이 오르려던 사다리였다. “사다리를 아예 불태웠다”는 말까지 나왔다.
내로남불과 사다리 걷어차기의 정점(頂點)은 ‘정치 보복’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9일 윤석열 후보의 ‘집권 시 적폐 청산 수사’ 발언이 알려지자 벌 떼처럼 일어났다. 우상호 총괄선대본부장은 긴급 회의를 소집해 “문 대통령에 대한 정치 보복 우려가 현실로 확인됐다”며 “현 상황을 비상시국으로 인식하고 단호히 행동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5년 내내 야권을 ‘적폐’로 몰았다. ‘적폐 청산’을 국정 과제 1호로 삼고 각 부처에 전담 기구를 설치했다. 전직 대통령 2명 포함 감옥에 보낸 사람이 100명이 넘는다. ‘조국 사태’로 온 국민을 서초동파와 광화문파로 분열시켰다. 그래 놓고 임기 말이 되자 종교 지도자들과 만나 “우리나라 민주주의에서 남은 마지막 과제가 통합과 화합”이라며 “오히려 선거 시기가 되면 거꾸로 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도 요즘 들어 “정치 보복이 가장 나쁜 정치 행태”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면서 “과거가 아닌 미래로 가자”고 한다. 민주당 정부의 잘못을 더는 따지지 말자는 얘기다. 이 후보는 “선거는 과거를 파헤쳐서 어떤 특정 정치 세력의 정권욕을 만족시키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선거는 과거를 그냥 덮어둠으로써 어떤 특정 정치 세력의 정권욕을 만족시키는 것 또한 아니다. 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혹시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임기 첫날부터 청와대를 떠날 날을 생각하고 일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