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MBC 뉴스데스크는 대선 관련 보도 9건 중 4꼭지를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가 공개한 이른바 ‘김만배 녹취’ 보도에 할애했다. 투표를 이틀 남겨둔 시점에, 대장동 주범의 일방적 진술이 담긴 육성(肉聲)을 “야당 후보 검증”이라며 튼 것이다. 지난 1월 유튜브 서울의소리 직원이 가져온 ‘김건희 녹취록’에 이어 또다시 친여 군소 매체 취재 내용을 전 국민에게 틀어주는 ‘확성기’ 역할을 한 셈이다.
MBC만 탓할 것도 아니다. KBS를 포함해 YTN, 교통방송에 이르기까지 공영방송이나 정부·지자체가 최대 주주인 방송사들은 언제나 여당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대 어느 정부나 그랬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선 이를 견제할 세력도 없었다. 예컨대 정치적으로 편향된 나꼼수 출신들이 연일 지상파 TV·라디오에 나와 ‘정부가 하는 일은 모두 옳다’ 식의 여론을 만들어 돌리는데도, “전파는 국민의 재산” 운운하며 지상파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방송 독립을 외쳤던 사람들 사이에서 이들 행태를 문제 삼았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제 대선은 끝났고, 5월이면 대통령이 바뀐다. 하지만 방송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방송사 경영진과 지배구조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작년 말 새로 임명된 KBS 사장은 임기가 2024년 12월까지이고, MBC 사장도 내년 2월까지 1년이 남았다. 방송사 경영진을 바꿀 수 있는 KBS 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은 2년 반 뒤에나 바뀐다. 문 대통령과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천 인사들이 다수(多數)인 이사회가 2024년 8월까지 KBS·MBC를 관리 감독하는 것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때도 시작은 비슷했다. 하지만 당시 집권 여당은 언론노조와 시민단체를 앞세워 이를 타개했다. KBS와 MBC에서 각각 전 정권이 추천한 이사 두 명을 사퇴시키고, 자신들이 추천한 인물로 그 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자신들이 다수인 이사회를 만든 뒤, 양대(兩大) 공영방송 사장을 교체했다. 모두 언론노조 출신들이었다. 당시 여당 일각에서 돌았던 ‘시나리오’대로 차근차근 진행된 것이다.
언론노조가 보여준 행동은 홍위병을 연상케 했다. 이른바 ‘축출 타깃’이 된 이사들의 직장이나 집을 찾아가 시위를 벌이고, 동네에 벽보를 붙여 망신을 주는 등 소동을 일으켰다. 강규형 전 KBS 이사는 수업 중인 강의실 입구로 언론노조원들이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일까지 겪었다. 그는 테러에 가까운 집단 행동에도 버티다가 해임되는 길을 택했고, 이후 해임 무효 소송을 벌여 승소했다. 하지만, 나머지 이사들은 언론노조의 위세와 압력에 못 이겨 모두 자진 사퇴했다.
요즘 방송가에선 다시 “새 정부가 출범하면, 언론노조가 할 일이 많아질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벌써부터 윤석열 당선인이 선거 유세 중 언론노조의 문제점을 지적한 발언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이 소식에 내심 미소 짓는 방송사 경영진이나 이사들도 있을 것이다.
최근 MBC 언론노조에서 나온 ‘공영방송 저널리즘의 본령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보도, 대장동, 부산저축은행 수사 봐주기 등 전반적으로 대선 보도를 잘했다. 하지만, 김건희 통화 녹취를 더 자세하게 보도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등의 내용이 나온다. 반면, 같은 날 MBC 익명 게시판에는 “우리 뉴스가 정말 대선 보도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최소한의 중립도 못 지켰다” 같은 비판 글이 올라왔다. 종교 재판관 같은 언론노조 위세에 눌려 있지만 이견(異見)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MBC 보고서는 ‘민주방송실천위원회’라는 곳에서 만들었다. 전국언론노조에 있는 조직인 ‘민주언론실천위원회’의 MBC 버전에 해당한다. 1980년대풍 고색창연한 이름을 지금도 쓰고 있다. 선거 때 자기편 감싸고 언론노조 출신 방송사 경영진 자리 보전해주는 것이 민주 언론 또는 민주 방송 실천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