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에너지위크 국제포럼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이야기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에너지 정책을 보면 독일과 문재인 정부는 많이 닮았다.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높으면서 탈원전·탈석탄 정책을 동시에 추진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과학보다는 이념을 앞세웠고, 결국 무모한 도전으로 끝나게 됐다는 점도 그렇다.

독일은 2030년까지 석탄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계획이다. 또 작년 말 원전 3기를 폐쇄한 데 이어 마지막 남은 3기마저 가동을 중단해 올해 말까지 원전을 없애기로 했다. 대신 2035년까지 100% 태양광·풍력으로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락가락 재생에너지에 뒤통수 맞은 독일은 지난해 풍력발전 부진으로 인한 전력 부족을 원전·석탄 발전으로 메웠다. 지난해 독일의 석탄 발전 비중은 28.1%로 전년(23.7%)보다 늘었다. 원전 발전도 증가했다.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율은 44.1%에서 40.9%로 감소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독일을 에너지 안보 위기에 빠뜨렸다. 석유·가스 공급은 불안해졌고, 재생에너지는 격차를 메우기 어려운 수준이다. 독일의 원유 수입 비율은 98%로 절대적이다. 천연가스는 95%, 연료탄은 100% 수입한다. 원유·가스·연료탄의 러시아산 비율은 34~55%다. 러시아와 연결된 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은 독일 에너지 생명줄이다. 이를 더 확대한다고 ‘노르트스트림2′까지 깔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가동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독일은 러시아의 에너지 볼모가 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독일의 천연가스 의존은 원전을 서둘러 종료하겠다고 한 결정의 당연한 결과였다”며 “독일의 탈핵 정책은 푸틴에겐 횡재”라고 했다.

3월 7일 독일 루브민에 있는 노르트 스트림 2 가스 파이프라인 시설./로이터 뉴스1

지난해 독일의 가스 요금은 47% 올랐고, 난방유(40%)·전기요금(18%)도 급등해 소비자 부담은 커졌다. 독일 언론은 정전으로 인한 대재앙 시나리오까지 우려하는 상황이다. 뒤늦게 가스 수입을 다변화한다면서 LNG(액화천연가스) 터미널 건설에 나섰다. 독일 경제장관은 “현재 에너지원에 대한 금기는 없다”고 했다. 원전 수명을 늘리고, 석탄발전소 폐쇄도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탈원전 탈석탄을 추진하면서 신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로 메우겠다는 계산이었다. 국제유가·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작년 12월 원전 발전량은 월 기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1월은 역대 2위다. 석탄 발전은 3~15% 늘었다. 비싼 천연가스를 11~13% 줄이면서 원전과 석탄으로 메운 것이다. 해외 자원개발 적폐 몰이는 5년 내내 이어졌고, 경제성을 이유로 해외 광산을 떨이로 내다 팔기에만 바빴다. 최근 광물 값이 폭등하자 매각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한다. 탈원전 부작용 비판을 피하려 꾹꾹 눌러 온 전기요금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가 됐다.

에너지 정책이 헛바퀴 도는 동안 글로벌 에너지 안보 지형은 크게 바뀌었다. 자원 무기화가 더 공고해졌고, 석유·가스 같은 전통 화석 에너지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진 게 현실이다. 석유·가스 공급은 점점 더 적은 수의 국가와 생산업체에 집중되면서 공급망은 더 위태로워졌다. IEA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가 세계 석유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현재 47%에서 2050년 61%로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신재생에너지·이차전지 등에 필요한 핵심 광물은 석유·가스보다 더 적은 국가에 집중돼 있다. 자원 공급망이 소수 국가의 규제 변화, 정치 불안정 영향을 더 빠르게, 크게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새 정부는 글로벌 자원 패권경쟁 대비를 정책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생존의 문제인 에너지 정책이 정권 호불호에 따라 다뤄져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