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독일 베를린 공장이 가동에 들어간 지난 22일(현지 시각) 새 공장의 신차 출고장에서 춤을 췄다. ‘덩실덩실’이라고도 할 수 없는 막춤이었지만,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해외 언론들은 “당초 작년 7월 예정이던 공장 가동이 늦어지면서 독일의 관료적 규제(red tape)에 분통을 터뜨렸던 그가 공장이 문을 열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미국 공장 두 곳과 중국 상하이 공장에 이은 테슬라의 4번째 생산기지인 베를린 공장은 유럽 최대 전기차 공장으로, 한 해 50만대를 생산할 수 있다.
공장이 들어선 베를린 외곽 브란덴부르크주 그뤼네하이데는 공산당 치하였던 옛 동독 지역이다. 인근 국제공항 건설 때도 당초 계획보다 개항이 9년이나 늦었을 만큼 늑장 행정으로 악명 높던 곳이다. 게다가 테슬라 공장은 부지 일부가 수자원 보호 구역이어서 독일 환경 단체들의 반대가 거셌다. 노조를 용인하지 않는 머스크식 경영에 대한 현지의 반감도 컸다.
규제가 득세할 조건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2019년 11월 착공 허가부터 준공까지 26개월. ‘중국식 속도’를 자랑하며 준공까지 단 15개월이 걸린 테슬라 상하이 공장보다 11개월 뒤졌지만 공장 가동이 늦어진 건 테슬라가 당초 계획에 없던 배터리 공장 신설을 뒤늦게 신청해 검토 과정이 추가된 탓이 컸다. 독일 언론들도 “테슬라 공장 가동은 독일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빛의 속도’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테슬라 베를린 공장이 가동하는 날 “독일도 빨리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만2000개 일자리, 옛 동독 지역을 부흥시키겠다는 독일 정부의 의지가 광속(光速) 행정을 낳은 것이다.
머스크가 한국에 공장을 짓고자 했다면 어땠을까. 환경 단체와 민주노총 눈치를 보느라 정부와 지자체는 공청회만 되풀이했을 것이다. 3년째 새 공장 착공도 못 하고 있는 SK하이닉스 같은 사례도 드물지 않다. 뭣보다 머스크는 테슬라 한국 공장의 대표나 공장장을 맡겠다는 사람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3일 한국 화학 기업 OCI 주총장에서 나온 이 회사 백우석 회장의 토로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 백 회장은 이날 한 주주의 질의에 “공장에 아무리 첨단 공법과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해 최대한 노력한다고 해도 사고가 안 나게 한다는 건 어느 회사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또 “(사고가 날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하니까 심지어 공장장도 서로 안 하려고 한다”고 경영자로서 고충을 털어놨다. 한국에서 대규모 공장을 준공하는 건 경영자가 춤출 일이 아니라 지뢰밭으로 들어서는 일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강성 노조로 유명한 독일 금속노조는 이번 테슬라 베를린 공장 준공에 환영 논평을 냈다. 테슬라가 한국에 공장을 추진한다면 민주노총이 그런 대국적 자세를 보여줄 수 있을까. 그보다는 ‘노조 무서워 공장 안 만든다’는 한국적 현실을 절감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일례로 기아는 최근 미래형 다목적 자율주행 전기차를 차세대 사업으로 정하고 이를 위한 전용 공장을 경기도 화성에 짓기로 했다. 기아가 국내에 공장을 짓는 건 무려 25년 만이지만, 노조를 의식한 탓인지 제대로 발표조차 하지 못했다.
각종 규제 타파를 약속한 새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상황판 같은 전시 행정은 집어치워야 한다. 대신 한국에서도 대규모 공장을 준공하는 날 기업가가 춤출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걸 목표로 삼아보라. 1인당 소득 5만5000달러가 넘는 독일이 할 수 있는 일을 한국이 못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들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