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가 지난 5월 25일 울산공장 본관 앞 잔디밭에서 '2022년 임금협상 승리를 위한 출정식'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차 울산 공장은 올해 ‘생산직 평균 연봉 1억원 시대’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고(高)연차 노동자가 많은 이곳의 평균 연봉은 현재 9600만원 선. 하지만 현대차 노조가 “더 받아야 한다”며 임금 큰 폭 인상 관철을 선언한 것이다.

‘블루칼라 연봉 1억원’은 우리 제조업 역사에서 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마냥 달가울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현대차 생산직들이 누리는 고연봉은 생산 현장에 뛰어든 청년 노동자에겐 접근이 원천 봉쇄된 특권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장년 중심 강성 노조에 휘둘려온 현대차는 정년으로 매년 생산직이 2000~3000명씩 퇴직해도 빈자리를 채울 젊은 근로자를 뽑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대차 노조는 정년을 늘려 지금의 특권을 더 연장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생산직 연봉을 얼마 올려주든 그건 그들을 고용한 현대차의 자유다. 하지만 현대차 국내 법인은 지난 1분기 3600억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적자를 냈다. 원자재 대란 같은 외적 변수가 작용했지만 핵심 원인은 해외 공장에선 10명이 할 일을 이곳에선 18명이 하고도 고임금을 챙겨가는 왜곡된 구조다. 국내 완성차 시장 85%를 차지하는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국내 공장마다 가장 최신의 자동화 설비까지 갖췄는데도 적자가 나는 이유다. 이런 구조에서 현대차 노조는 글로벌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다. 흑자를 내고 있는 해외 공장들 덕분에 현대차의 전체 글로벌 이익이 흑자인 덕분이다.

1%대 영업이익률에 허덕이는 현대차 협력업체 노동자들, 외산차 대신 현대차·기아가 만든 차들을 압도적으로 선택하는 국내 소비자들이 적자를 내고도 고연봉 잔치를 벌이는 현대차 생산직을 어떻게 바라볼지 굳이 물어봐야 할까. 전문가들은 “현대차는 이미 1고 3저의 늪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고임금·저생산성·저효율·저수익 구조를 말한다.

현대차의 1고 3저 구조는 일본의 도요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도요타는 국내에선 적자를 내고 해외에서 벌충하는 현대차와 달리,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 시장에서 더 큰 이익을 내고 있다. 회사의 생존을 우선하는 노사가 함께 만들어내는 압도적 생산성 덕분이다. 이를 바탕으로 도요타는 테슬라가 촉발한 전기차 혁명 와중에도 최대의 파이를 지키며, 전기차 전환을 내실 있게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는 “전기차 전환은 그래도 우리가 도요타보다 앞섰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현대차는 전기차 시장에선 테슬라, 기존 내연차와 하이브리드 시장에선 도요타를 눈에 불을 켜고 따라가야 할 처지다.

테슬라가 주도하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자동차 업체들은 IT 기업화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변화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이라는 의미다. 아이폰의 출현에 대응하지 못한 노키아, 모토롤라가 사라진 것 같은 일이 자동차 시장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고 한 게 인텔의 전 CEO 앤디 그로브다. 메모리를 포기한 미국 인텔을 시스템 반도체 최강자로 만든 그는 찰나 같은 변곡점을 놓치면 생존 경쟁에서 영원히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현대차를 두고 “다른 글로벌 기업 같은 위기감이나 절박함을 잘 느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현대차 스스로 분발함과 함께 노조의 특권 내려놓기가 필수적이다. 안 그러면 울산발 ‘블루칼라 연봉 1억원 시대’는 올해나 내년 실현된다 해도 다음 세대 노동자들에게 전승될 수 없는 한국 자동차 산업 한때의 추억으로만 남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