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내각에 검찰 출신이 너무 많지 않으냐는 점을 지적하자 “전 정권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으로 도배를 했는데”라고 받아쳤을 때 기자는 좀 실망했다. 우선 팩트가 틀렸다. 전 정권 시절 나중에 민변 출신이 많아지긴 했다. 하지만 출범 초기만 비교하면 전 정권에 민변 출신은 1명, 현 정권 검찰 출신은 13명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군사정부 시절인 5공화국 초기 육사 하나회 회원들이 청와대 요직(민정·사정·경호)을 장악하긴 했지만 행정부까지 이렇게 골고루 포진하진 않았다. 5공 1기 내각에 군(軍) 출신은 국방부 장관을 제외하면 내무부·총무처(현 행정안전부로 통합) 장관 2명뿐이었다.
그 명분으로 내건 “능력이 있다면 쓰는 것”이란 ‘능력주의’ 인사 원칙도 빈틈이 많다. 일 잘하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등용한다는 발상 자체는 나무랄 데 없다. 다만 내용이 문제다. 국가보훈처장에 검사 출신 국회의원을 천거하면서 그 이유를 “아버지가 베트남전 참전 용사”라고 내세운 건 납득하기 쉽지 않다. 인사권자는 “안 될 건 없지 않으냐”는 식인데 “그럼 그게 능력 위주 발탁이냐”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정부가 임명한 장관들 중 “그분이 정말 그 분야에서 능력이 가장 뛰어나냐”고 주변에 물으면 “글쎄요”라는 반응이 나오는 인물이 적지 않다. 장관 한 분에게 “앞으로 어떤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생각 좀 해보고”라는 답이 돌아왔다. ‘준비가 안 됐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공직기강 비서관도 가까웠던 검사 출신 후배 변호사를 앉혔는데 ‘능력 위주’라고 주장할 순 있겠지만 공정과 상식이란 대의(大義) 싸움에서 밀린다. 그 비서관은 과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수사를 하면서 한 탈북자 출신 공무원을 간첩으로 몰아 구속 기소했다가 증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징계를 받고 검사복을 벗은 장본인이다. 흔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 중 하나는 검찰이 수사권을 내려놓으면서 벌어질 수 있는 공백이다. 허술한 수사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반발이다. 그런데 이 비서관은 당시 잘못된 수사를 바로잡은 게 아니라 더 악화시켰다. 그리고 재판에서 지자 검찰을 떠났다. 억울하게 고초를 치른 피해자에게 사과 한 번 할 법했지만 하지 않았다. 아마 잘못한 게 없고 판결이 반드시 진실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믿는 모양이지만 적어도 법치주의 아래선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태도다. 능력은 아깝더라도 접었어야 했다.
통합은 당연하다면서 취임사에도 넣지 않은 대통령이다. 그 당연한 걸 행동으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통합이란 상대편을 껴안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벌어지는 소음 시위 문제는 그래서 아쉽다. 집회·시위 자유라는 법적 권리에 대통령이 개입한다는 게 어색할 순 있지만 과감히 시위를 자제해달라고 호소했으면 최소한 상대편 진영에선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시위는 못 막았을지 모르나 통합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계기였다. 그걸 회피해버리고 나니 반대쪽에서 또 보복 시위에 나선다고 하고, 4대째 내려오는 ‘복수혈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6년 전 미셸 오바마 전 미 대통령 부인은 전당대회에서 “저들이 저급하게 나가더라도 우리는 품격을 지키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정부가 그 의미를 되새겨주길 바란다. “쟤들(전 정권)은 파렴치하게 굴었는데 우리는 왜 단정하게 가야 하나”라는 울분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국민 다수가 이 정권을 선택한 데는 이 대립과 반목의 역사를 이젠 끊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실렸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