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입구의 모습. /뉴스1

‘악법(惡法)’을 판별하는 기준은 분명하다. 어떤 의도로 법을 만들었는지를 먼저 따지게 돼 있다. 정치 권력이 자신을 비호하려고 만든 법은 악법 중 악법이다. 법으로 지켜야 할 정의와 평등을 노골적으로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예 법으로 효력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도 악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불과 1주일 앞두고 민주당이 국회에서 강행했다. “검수완박 처리 안 되면 문재인 청와대 20명 감옥 갈 수 있다”는 말이 민주당에서 나왔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민주당 의원은 “검찰 수사권이 폐지되면 경찰로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증발한다”고 했다. 지난 정권을 적폐로 몰아 전직 대통령, 청와대 비서실장, 장관 등을 줄줄이 감옥에 보냈던 문 정권이 자기들이 저지른 불법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조차 받지 않겠다며 검수완박을 한 것이다. 법이라는 가면을 쓰고 헌법과 법치를 유린했다.

악법도 법적으로 무효가 되려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의힘과 법무부가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을 헌재에 청구했다. 입법 절차와 내용이 모두 위헌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여야가 최장 90일간 법률안을 검토하게 돼 있는 안건조정위를 불과 17분 만에 끝냈다. 법 조문 심사와 찬반 토론은 다 건너뛰었다. 비슷한 사건에서 헌재는 ‘안건조정위가 4시간 51분 진행됐다면 실질적으로 안건 심사가 가능했다’고 판결한 바 있다. 검수완박에서 ‘17분 안건조정위’는 아예 열리지도 않았던 것으로 봐야 한다. 법률안을 심사하지 않고 표결하는 것은 무효다. 헌법이 보장하는 의회 민주주의, 적법 절차,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검수완박은 헌법이 보호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요소도 있다. 문 정권의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은 이미 ‘과부하’ 상태에 빠졌다. 사건 처리 기간이 평균 49일(2018년)에서 64일(2021년)로 크게 늘었다. 검수완박이 예정대로 오는 9월 10일 시행되면 공직자, 방위사업, 대형 참사 등 범죄 수사도 경찰로 넘어온다. 수사 지연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경찰이 제때 사건을 처리하지 못하면 범죄 피해를 당한 국민이 수사와 재판으로 신속하게 구제받을 수 없게 된다. 고발 사건을 경찰이 뭉개도 당사자는 이의 신청도 못 하게 돼 있다. 범죄자는 만세 부르고 피해자만 고통받는다.

헌법재판관은 정치인이 아니라 법률가다. 권한쟁의, 위헌심사 등 정치적 사안이 재판에 올라오더라도 철저하게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판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헌재는 재판관 9명 중 5명이 민변, 우리법연구회, 인권법연구회 등 이른바 ‘진보’ 출신이다. 이들은 주요 사건에서 헌재 결정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민의힘이 권한쟁의심판과 함께 ‘검수완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했지만 헌재가 아무 조치를 안 했다. 결국 검수완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었다.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을 위한 공개 변론이 오는 12일 헌재에서 열릴 예정이다. 헌법재판소법 66조에 ‘권한 침해의 원인이 된 행위에 대해 헌재가 무효를 확인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검수완박 입법이 위헌이며 무효라고 결정하는 권한이 헌재에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헌법 수호자’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헌법을 짓밟는 악법을 막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검수완박 시행까지 66일 남았다. 헌재가 제때 심판을 내려야 한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