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광화문 네거리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던 행인 중 몇몇이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 모드를 실행했다. 가림막을 걷어내고 재개장한 광화문광장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박원순 시장 때 서울시는 장군을 정부서울청사 앞으로 옮기는 방안을 발표했다가 여론에 부닥쳐 무산됐다. 충무공 동상은 1㎜도 움직이지 않았다. 태산처럼 고요하게 서 있었다.
한산대첩을 그린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 누적 관객 500만을 넘어섰다. 김한민 감독의 전작 ‘명량’은 극장에서 1760만명이나 관람했다. 이순신 이야기는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모양이다. 내년에는 이순신 삼부작에 마침표를 찍는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한다. 장군도 결국 최후를 맞겠지만 그 장엄한 엔딩을 눈에 담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다.
이순신 이야기는 왜 꾸준히 대량 소비될까. 나라와 백성이 절체절명의 낭떠러지에 몰렸을 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영웅이라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다. ‘명량’이 흥행한 2014년 여름엔 세월호 사건으로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무력감이 팽배했다. 누군가 나타나 엉망인 꼴을 바로잡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자아냈다. 당시 반일 감정도 영화 흥행에 기름을 부었다.
한국인은 밥을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충격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2022년 여름은 2014년과는 다른 이유로 어지럽고 무력하다. 감염병의 기세는 꺾이기는커녕 반등하고 있다. 물가와 금리가 올라 살림은 팍팍하다. 폭염에 물난리까지 날씨도 사납다. 정치는 지리멸렬이다. 내일은 또 어떤 충격이 들이닥칠까. ‘한산’은 그래서 속이 뻥 뚫리는 영화다. 거북선이 적진을 돌파하고 사방으로 포탄을 날릴 때 쾌감이 폭발한다.
‘한산’과 ‘명량’을 다시 보는데 이름 없는 격군들에게 자꾸만 눈길이 붙잡혔다. 판옥선이나 거북선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수부(水夫)들 말이다. 바깥 형세를 가늠할 수 없는 밑바닥에서도 그들은 치열했다. 전진, 후진, 선회 등 명령이 내려오면 팔이 부서져라 노를 저었다. “격군들을 보강하라” “더 힘차게 저어라” “격군들을 독려하라” 같은 대사가 크게 들렸다.
‘널빤지 밑이 저승’이라고 뱃사람들은 말한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에 나라와 백성의 생사(生死)가 달려 있었다. 영화 속 격군들은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내연기관 같았다. 왜군이 배에 올라타면 백병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발밑이 저승이니 죽기 살기로 싸웠다. ‘명량’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 격군이 말한다.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거 알기나 할랑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순신 이야기는 각성제다. 어떻게 지켜낸 나라인지 주기적으로 일깨워주기 위해 이 영웅 서사는 존재한다. 이순신과 장졸들 외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를 저은 격군들, 후방에서 전함을 만들고 물자와 군량미를 댄 백성들이 있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자기 삶을 자기보다 더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영웅으로 정의했다. 한산대첩은 충무공과 이름 없는 영웅들의 승리였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는 난중일기의 어록이 적혀 있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지휘관은 이 말로 장졸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영웅은 가슴에 품고 가는 등대 같은 존재다. 어둠은 빛을 더 빛나게 하고 빛은 어둠을 더 어둡게 만든다. 영화 ‘한산’에 끌린다면 현실이 어둡고 아프기 때문일 것이다. 이순신 이야기는 고통을 가라앉히는 진통제다. 오늘 만나는 사람 모두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