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국민의힘을 주축으로 지난 4일 발의된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법’(이하 반도체강화법)을 국회 홈페이지 내 ‘의안정보시스템’에 접속해 찾아봤다. 의안정보시스템에선 발의 의원 명단과 법안 요지,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 및 상정된 날짜, 심사 진행 상황 등이 확인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정책을 뒷받침할 이 법은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 2건으로 이뤄졌는데, 발의자는 각각 35명(국가첨단전략산업법)과 30명(조세특례제한법)으로 나와있다. 이 중 여당 의원만 따져보면 각각 28명과 25명으로, 당 소속 의원의 약 21~23%가 법안 발의에 각각 참여한 셈이다.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장인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2일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활동 성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물론 발의자 수가 법안 통과 자체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당론으로 채택된 법안이나, 정부 추진 법안에 참여한 발의 의원 수가 휠씬 적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발의자 수를 보는 순간 ‘여권(與圈)이 대대적으로 홍보한 법안치고는 그다지…’라는 느낌부터 들었다. 여당 지도부는 앞서 지난 1일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논의를 위해 8개 정부 부처의 장관 내지 차관들을 한자리에 불러 당·정(黨政) 정책 협의를 진행했고, 바로 다음 날(2일)에는 여당 반도체특위가 국회에서 따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특위 활동상을 소개하는 자리도 가졌다. 그 결과물을 집대성한 것이 반도체강화법인데, ‘사전 행사’까지 연 걸 감안하면 기대보다 발의자 수가 적게 느껴졌다. 만약 국민의힘 소속 의원 115명 전원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면 반도체 육성에 대한 절실함을 상징적으로 더 보여주진 않았을까.

이번 법안에는 반도체 같은 국가첨단전략산업의 시설 투자 세액공제 비율을 대폭 높여 미국 등 선진국들의 세금 지원 혜택과 균형을 맞추는 내용을 비롯, 첨단 산업단지를 만들 때 지자체 등과의 갈등을 조기에 해결할 수 있도록 조성 단계부터 국가한테 주도권을 부여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나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그동안 경쟁국에 비해 미흡한 점으로 지적되던 부분들을 보완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부터 더 긴장을 해야 한다. 법안이 아무리 좋은 대책을 담았더라도 국회를 통과하지 않으면 시행되지 못한다. 현재 의안정보시스템에는 반도체강화법을 이루는 두 법안이 지난 5일 소관 상임위인 산자위와 기재위에 각각 회부됐지만, 아직 발의된 지 열흘 정도밖에 안 된 만큼 상임위에 정식 상정되진 않은 것으로 나와있다. 소관 상임위 심사와 의결은 물론, 법사위와 본회의를 다 무사히 거쳐야 하는 만큼 입법 과정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특히 여당은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협조를 받지 못하면 법안을 통과시키기 쉽지 않다.

우려스러운 건, 법안 처리가 자칫 여야 간 정쟁이나 정치 이슈에 밀려 늦어질 가능성이다. 앞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原油)’로 불리는 데이터를 인공지능(AI)·헬스케어 산업 등에 활용할 수 있게 하려던 이른바 ‘데이터 3법’은 발의된 지 14개월이 지나 간신히 국회를 통과했다. 비록 지난 정부 때였지만, 불과 약 2년 전 일이다. 지연 처리 때문에 당시 신(新)사업을 준비하던 기업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미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엔비디아 등이 최근 줄줄이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등 침체가 예상된다. 이에 미국 상·하원은 지난달 520억달러의 보조금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 지원법을 통과시키는 등 적극 대처하고 있다. 우리도 국내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책 시행이 시급하다.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긴장을 풀면 안 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