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탈(脫)원전 정책은 돌아보면 희비극이다. 시작은 희극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6월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 행사까지 직접 가서 “원전 중심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기념사에서 원자력 대신 핵(核)이란 단어를 자꾸 썼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정작 위험한 ‘핵’은 저 북녘 땅에 있는데 여기 있는 원전을 ‘핵 위협’처럼 포장해 공포감을 심어주려는 듯했다. 그런데 ‘도대체 탈원전은 왜 하는 거야’란 의문을 풀어주지 못했다. 원전은 위험하니 안전한 에너지원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원전이 왜 위험한지 입증하지 못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거듭 거론했지만 그건 원전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극히 드문 자연재해에 어이없는 관리 책임자 오판이 겹쳤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조종사를 못 믿으니 비행기도 타지 말아야 한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이성적 통제를 기반으로 발전하는 법인데 그걸 부정했다. 그 뒤 탈원전을 둘러싸고 벌어진 막장극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희극의 정점은 5년간 그 법석을 피웠는데 결과적으로 원전 비율이 2017년 26.8%에서 2021년 27.4%로 되레 늘었다는 대목에 있다.
탈원전 정책에 관여했던 공무원들은 “대통령 탈원전 의지는 확고했다”면서 “단지 왜 그걸 해야 하는지 설명은 재대로 안 해주더라”고 전한다. 정부 관계자는 “애초부터 탈원전이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시장에 관심이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고 해석했다. 그의 분석을 비유로 요약하지만 탈원전을 바람잡이로 활용해 에너지 시장을 혼란스럽게 한 다음, 장막 뒤에서 새롭게 펼쳐진 신재생 이권을 챙겨가려는 기만술 아니었나라는 의심이다.
이제부턴 비극이다. 탈원전이 정치적 공방과 섞이면서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검찰 수사가 이뤄졌다. 산업통상자원부 실무자들이 무더기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중 셋이 먼저 재판정 앞에 섰다. 현직 국장 둘과 과장 한 명. 다음 달 선고가 내려진다. 검찰은 이들에게 징역 1년에서 1년 6개월을 구형한 바 있다. 혐의는 공용 전자 기록 손상(파일 삭제)과 방실(房室) 침입, 감사 방해 등이다.
이들은 재판에서 형량이 낮아지더라도 무죄를 받지 못하면 본의 아니게 공직을 떠나야 할 형편이다. 연금도 깎인다. 2년째 수사를 받느라 변변한 보직도 못 받고 떠도는 신세. 변호사비로만 억 단위 돈이 들어갔다. 모두 자기 돈이다. 재판에서 이기든 지든 고스란히 감당해야할 비용이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말 못 할 고통을 겪고 있다. 20년 이상 공직자로서 자부심과 사명감을 지니고 불철주야했던 이들은 ‘정부 정책을 따라 일한 죄’로 인생이 거덜나기 일보 직전이다.
이들이 얼마나 중죄(重罪)를 저질렀는지 물론 판사가 알아서 잘 판단하겠지만 이들에게 씌워진 ‘탈원전 부역자’란 낙인은 다소 부당하다. 공개된 공소장을 찬찬히 읽어보면 이들은 법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으로서 최대한 불법을 피해 가려 애썼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이 이 정부 들어 재개될 수 있었던 건 전 정부 때 아예 이 사업이 취소되지 않았던 덕이다. 그 이면에 미약하나마 이들의 노력도 있었다.
전 정부 초기 (탈)원전 정책 담당자와 대화한 일이 있었다. “이거 완전 무리한 정책인데…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겠어요.” “정해진 국가 정책인데 (공직자가) 거부할 수 있나요.”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그 운명은 이제 가혹한 돌팔매로 날아들고 있다. 더 안타깝고 답답한건 이들을 국정 과제 이행이란 이름으로 구렁텅이로 떠민 사람들은 분명 따로 있을 텐데 이들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