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그해 남북, 미북 관계에 대해 “역사적” “엄청난”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란 표현을 썼다. “내가 생각해도 자화자찬 같지만 사실”이라고도 했다. 남북, 미북 쇼가 쏟아진 2018년은 문재인 정부가 생각만 해도 흐뭇한 한 해였을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수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평양 시민 15만명 앞에서 - 문재인(가운데)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맨 왼쪽) 국무위원장이 19일 밤 평양 능라도 ‘5월1일 경기장’에서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손을 맞잡고 관중석의 평양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평양시민 15만명이 참석한 이날 공연 끝 무렵 문 대통령은 단상에 올라 “’남쪽 대통령’으로서 김정은 위원장 소개로 인사말을 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 군중을 상대로 한 한국 대통령의 연설은 처음이다.

그해 4월 남북 판문점 선언에는 “당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북한식 표현이 여러 군데 등장한다. 내용도 ‘확성기 방송과 전단 금지’처럼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하던 것으로 채워졌다. 북에 길들고 그들 사고방식대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북이 내민 문서에 그냥 서명한 것은 아닌가.

판문점 도보 다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은 배석자 없이 44분간 대화했다. 정상 회담이라고 하지만 정상끼리만 만나는 경우는 없다. 해서는 안 될 말과 약속이 있고 상대 기만술에 넘어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 공항에서 김정일 차를 타고 20여 분 둘만 이동한 적이 있으나 ‘돌발 상황’에 가까웠다. 우리를 70년 공격해온 집단의 정상과 기록 한 줄 없이 무슨 말을 나눈 건가.

당시 문 전 대통령 입 모양을 보면 김정은에게 “발전소 문제...”라고 말한 것으로 포착됐다. 청와대는 “신(新)경제 구상을 USB에 담아 직접 김정은에게 건네줬다”고 했다. 그런데 판문점 회담 직후 산업부는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을 검토하는 문건을 다수 만들었다. 이 문건은 산업부 공무원들이 감사원의 월성 원전 1호기 감사 직전 불법 삭제한 파일 530건 가운데 들어 있었다. 핀란드어로 ‘북쪽’이란 뜻인 ‘pohjois’(포흐요이스), 북한 원전 추진 방안의 약어인 ‘북원추’ 등이 파일명으로 사용됐다. 뭔가 감추려 한 흔적이다.

그때 문 정부는 원전이 위험하다며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로는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원전 기술은 핵과 전력 확보에 매달리는 김정은에게 절실한 것이다.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우리 원전은 무너뜨리면서 북 원전은 지원하려는 이 정신 분열적 행태의 진상은 무엇인가.

그해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남북 군사 합의를 체결했다. 당시 문 정부는 “군사훈련을 하지 못하는 서해 완충 수역 길이가 남북 각각 40㎞로 똑같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발표 수역을 실측해보니 남측 85㎞, 북측 50㎞로 우리가 35㎞를 더 내준 것으로 드러났다. 거짓 발표를 한 것이다. 북은 변변한 정찰 자산이 없지만 우리는 무인기 등으로 수도권을 겨눈 북 장사정포 340여 문을 감시해왔다. 그런데 군사 합의는 우리 강점인 정찰 능력에만 족쇄를 채웠다. ‘같은 거리, 같은 전력(戰力)’ 협상이란 군축의 기본조차 무시한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도보 다리 대화도, USB 내용도, 군사 합의 과정도 이전 정부가 알려준 것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해 3월 우리 예술단이 평양에 갔다. 당시 문 정부가 북으로 처음 띄운 전세기가 이스타 항공이었다. 이스타 창업주인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은 2018년 7월 문 전 대통령 딸 가족의 태국 이주와 취업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정부는 ‘가격’과 ‘방북 경험’으로 이스타 항공을 선정했다고 했지만 정말 그뿐인가.

2018년 이후 북은 문 정부에 무슨 빚이라도 받아내려는 것처럼 큰소리쳤고, 문 정부는 ‘삶은 소대가리’ 같은 막말을 듣고도 대응하지 못했다. 오히려 ‘김정은 비핵화 의지’ ‘김여정 팬클럽’을 띄웠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2018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