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서울 남대문 부근에서 촛불 집회가 열렸다. 낮 최고기온이 영하를 밑도는 추위에도 수백 명이 나와 손뼉 치고 노래하며 구호를 외쳤다. 흡사 종교 집회나 축제 현장 같았다. 매주 반복되는 행사인지라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지만, 행사 주최 측인 ‘촛불행동’의 페이스북 게시물에 생생한 현장 분위기가 담겨 있다. 행사는 벌써 24주째 열리고 있었다.
이들 집회엔 조형과 상징물이 빠지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어떤 날엔 키가 2m 가까이 되는 윤석열 대통령 조형물을 끌고 나왔고, 어떤 날은 무릎 꿇은 윤 대통령 형상의 이마에 부적을 덕지덕지 붙이기도 했다. 얼굴을 커다랗게 그리고 ‘패륜 윤석열’이라 쓴, 왕복 10차선 도로를 꽉 채운 대형 걸개 그림을 펼쳐 놓고 갈갈이 찢는 이벤트를 벌인 날도 있었다.
이런 모습은 6년 전 일을 떠올리게 한다. 박근혜 정부 말 광화문에서도 연일 촛불 집회가 열렸다. 그때도 박 전(前) 대통령 모습 조형물이 어김없이 등장했고, 계란을 던지고, 얼굴에 낙서하고 조롱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준비한 이벤트였다. ‘그때 그 사람들’이 지금 비슷한 일을 벌이고 있다는 징후가 보인다. 예컨대 지난 9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 나체 그림 전시회를 열려고 했던 단체 사람들 상당수가 과거 박 전 대통령 누드 풍자화 ‘더러운 잠’ 등을 국회에 전시했던 ‘곧,BYE(바이)!전 작가연대’ 소속 회원들과 겹친다고 한다.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 촛불이 켜지고, 조형물이 등장하고,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에서 촛불 집회는 유사 제의(祭儀)적 성격을 갖는다. 독일 나치가 중시했던 뉘른베르크 전당 대회의 하이라이트도 어둠 속에서 벌인 횃불 행진이었다. 제의적 행위를 통해 군중은 서로를 모방하고, 일체감을 갖게 된다. 그렇게 자신들만의 서사를 만든다. 20세기 초 파시즘 연구자들은 반복되는 집회와 상징, 행진 등을 통해 대중이 스스로를 숭배하는 ‘정치 종교’가 등장했다고 본다. 촛불 집회도 23회, 24회… 이렇게 회차를 거듭하며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점에서 가끔씩 열리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와 전혀 성격이 다르다.
모든 제의에는 희생양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 시기 그것은 세월호를 타고 수학 여행 가다 숨진 학생들이었다. 이번 정부에선 핼러윈 축제서 숨진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소환될 것이다. 아무 죽음이나 소환되진 않는다. 촛불은 죽음을 차별한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 때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나 광주 학동 건물 붕괴 사고 사망자들이 희생자로 호명되는 법은 없다. 이는 촛불 제의를 여는 사제(司祭)들의 고유 권한이다.
촛불 집회에서 과거 탄핵 정국 시기 집회 행태가 재현되는 것을 보면 2차 대전 끝나고 태평양 섬 지역 원주민들에게서 발견된 ‘화물 숭배(Cargo Cult)’가 연상된다. 전쟁이 끝난 뒤 인류학자들이 섬을 찾았을 때, 원주민들이 활주로 옆에 격납고와 관제탑 모양 오두막을 짓고 나무로 만든 헤드셋 모양 기구를 낀 채 하늘을 향해 팔을 휘젓는 모습을 자주 발견했다. 그렇게 하면 비행기가 나타나 물건 가득 든 상자를 내려 줄 것이라 믿는 원시적 심리에서 비롯된 의식이다. 원주민들은 외양만 따라했을 뿐 인과(因果) 관계를 알지 못했다.
촛불 집회도 어떤 이들은 단지 ‘열심히 나가면 대통령이 탄핵되거나 물러날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갈지도 모른다. 어스름 속 촛불을 들고 웃거나 춤추는 모습의 참가자들을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면 그 달뜬 표정에선 주술적 열기마저 느껴진다. 비가 내려야 멈추는 기우제처럼, 이 촛불 집회는 이번 정부가 끝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시민들이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