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9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온라인에 “(코로나 현장에서) 의료진이라고 표현되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냐”고도 했다. 코로나와 전쟁하면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코로나 방역 최전선에 나선 의사와 간호사 숫자는 비슷했다. 사실부터 잘못된 말로 의사와 간호사를 갈랐다. 13만 의사보다 40만 간호사(면허증)의 박수를 받는 게 선거 득표에 유리하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문 前대통령과 대화 나누는 이재명 - 문재인 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 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최근 민주당이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간호사 처우 개선 등이 골자인 간호사법 제정안의 본회의 직회부를 밀어붙였다. 간호 단체 요구엔 귀 기울이면서 의사협회 반대는 무시했다. 의사가 40만, 간호사가 13만이었어도 이랬을까. 간호사법에 앞서 민주당이 여야 합의 없이 본회의에 직회부한 법안은 양곡관리법이다. 남아도는 쌀을 세금으로 매입하는 내용이다. 정부·여당이 조(兆) 단위 세금이 들어가는 데다 쌀 과잉 생산이 우려된다고 반대했지만 깔아뭉갰다. 농업에 종사하는 전체 100만 가구 중 53만이 벼농사를 짓는다. 민주당 텃밭인 호남 지역에 집중돼 있다. 벼농사 가구가 전체의 10~20%에 그치고 호남 편중이 아니더라도 민주당이 양곡법을 강행했을까. 농업 구조 개선이라는 큰 틀과 어긋나도 선거에 득만 되면 그만이라는 속셈 아닌가.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30조원 추경’을 주장하며 전체 가구 중 소득 하위 80%에 속하는 1700만 가구에 최고 40만원씩 ‘물가 지원금’을 나눠 주자고 했다. 7조2000억원을 뿌려 ‘난방비’를 지원하자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 때 코로나 지원금 등으로 돈을 풀면서 물가가 오르자 이걸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는데 다시 수조원 규모 돈을 풀면 물가만 다시 오르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도 현금 살포를 다시 동원해 국민을 ‘2대8′로 가를 궁리를 했다. 이 대표는 난방비 재원 확보를 위해 “에너지 기업들이 과도한 불로소득을 취한 것에 대해 전 세계에서 시행하는 것처럼 횡재세(稅) 개념의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도 검토해야 된다”고 했다. 미국·일본 등은 횡재세가 없고, 영국 석유 회사처럼 자체 유전 덕분에 ‘횡재’로 돈을 번 한국 정유 회사도 없다. 그릇된 팩트로 ‘부자 기업’과 ‘난방비 서민’을 가른 것이다. 민주당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반도체 지원법을 만들 때도 경쟁국들이 다 하는 대기업 세제 지원을 ‘부자 감세’라고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는 정책이 실패할 때마다 국민을 편 갈랐다. 부동산이 폭등하자 임대인 대 임차인, 서울 대 지방, 강남 대 비강남으로 금을 그었다. 재산세 현실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집값 기준으로 주택 소유자를 ‘92대8′로 가르더니, 부동산 민심이 폭발하자 종부세 대상이냐 아니냐로 ‘96대4′의 프레임을 걸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엔 “대구와 경북은 최대한 봉쇄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가 ‘지역 갈라치기까지 하느냐’는 비판을 받았다. 문 정권은 5년 내내 다수(多數)에 영합해 소수(少數)를 공격하는 편 가르기를 하다가 정권을 잃었다.

당장은 다수와 지지층 원망을 듣겠지만 결국 국민 인정을 받게 되는 정책이 있다. 연금 개혁, 탈원전 탈출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10% 가진 자를 때려 나머지 표심을 자극하려는 포퓰리즘 대신 쓴 약을 먼저 먹자고 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깨어 있는 많은 국민이 표로 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