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휴대폰 매장에 이동통신 3사의 로고가 보인다./뉴스1

지난해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 ‘번호 이동’ 건수는 전년 대비 11% 줄어든 약 453만건으로 사실상 역대 최소였다. 번호 이동이란 휴대전화 이용자가 쓰던 번호를 그대로 두고 가입한 통신사를 다른 업체로 바꾸게 해주는 제도다. 이동통신 시장 내 통신사 간 경쟁 활성화를 가늠하는 수치로 통용된다. 보통 소비자들은 휴대전화를 교체할 때 이용 중인 통신사보다 좀 더 유리한 보조금(휴대전화 단말기 할인 지원금)을 주는 다른 통신사로 갈아탈 수 있는데, 이런 경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통신사들이 타사 가입자를 유치하려는 보조금 경쟁을 이전처럼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가 보유한 역대 통계를 확인해보니, 번호 이동이 연간 500만건에 못 미친 해는 이 제도 도입 첫해인 2004년(293만건)을 제외하면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통신 시장 경쟁 둔화는 지난 2014년 도입된 단통법(단말기 유통 구조 개선법)의 영향이 크다는 게 통신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단통법은 소비자가 한 통신사 대리점에서 휴대전화를 살 때 가입 유형이나 장소 등에 따라 누구는 싸게 사고, 누구는 비싸게 사는 일이 없도록 같은 보조금을 지원토록 한 법이다. 통신 3사가 미리 보조금 액수를 공시해 이를 넘지 못하도록 했고, 대리점 현장에서 소비자에게 더 줄 수 있는 보조금은 공시한 지원금의 15%까지만 허용했다. 보조금 남발에 따른 시장 과열을 방지한다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 통신사는 타사 가입자를 끌어들이려 굳이 보조금 출혈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 셈이다. 단통법 이전에 주로 1000만건이 넘던 번호 이동은 단통법 첫해(2014년) 800만건대로 떨어졌다. 이후 2018년부터 500만건대를 유지하다 지난해 이마저 깨진 것이다. 번호 이동 경쟁이 줄어든 반면,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통신 3사의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6% 늘어난 4조3835억원으로 2년 연속 4조원을 돌파하는 호실적을 기록했다. “결국 소비자들을 위한 보조금과 마케팅 비용을 줄여 영업이익을 늘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국민의 통신비 절감을 위해 통신 시장 경쟁 활성화 방안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달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 경제 민생 회의에서 ‘특단 대책’ 마련을 지시하자, 주무 부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통신 시장 경쟁 촉진 방안 TF(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현 통신 3사 과점 체제에선 제대로 경쟁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보고 제4 이동통신 도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소비자 선택권 확대 차원에서 5G 중간 요금제 확대, 어르신 요금제 출시 등과 같은 요금제 다양화를 통신 3사에 직접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해법을 통신 시장 경쟁 활성화에서 찾으려는 건 분명 맞는 방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이제 정부도 경쟁을 막고 있던 단통법을 폐지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선 반쪽짜리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회 과방위 검토 보고서는 단통법에 대해 “소비자 모두 평등하게 휴대전화를 비싸게 구매하는 방식을 유도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2년 가계 동향 조사에 따르면, 통신비 지출은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통신비 가운데 이동통신 요금과 같은 통신 서비스 비용이 전년 대비 2.6%, 휴대전화 단말기 같은 통신 장비 비용은 6.9% 늘었다고 한다. 단통법 폐지에 따른 보조금 경쟁은 소비자들에게 갈수록 비싸지는 휴대전화 구입 부담 완화로, 통신비 절감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