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1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홈페이지에 공개된 8월 27일 자 서한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그대로 통과될 경우 정보의 자유와 언론 표현의 자유를 심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사진은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2014년 6월 1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서 당시 국제개발법기구 사무총장 자격으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유엔과 국내외 언론 단체들의 잇단 반대에도 언론 보도에 재갈을 물린다는 언론중재법을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정부·여당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지난달 보낸 언론중재법 반대 서한을 자신들끼리만 돌려본 뒤 야당과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유엔 서한을 고의적으로 숨긴 것이다.

이 서한은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면 언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며 “과도한 손해배상이 언론의 자체 검열을 초래하고 공중의 이익이 걸린 중요한 토론을 억누를 수 있다”고 했다. 서한은 “국제 인권 기준에 일치하도록 법을 수정하라”면서 이 같은 우려를 국회의원들과 공유해 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서한을 야당에 보내지 않았고 공개하지도 않았다. 여당 의원들만 돌려본 뒤 쉬쉬하고 넘어갔다. 그러자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이례적으로 서한을 홈페이지에 곧바로 올렸다. 서한을 은폐하려다 국제 망신을 자초한 것이다. 그동안 여당은 언론중재법이 언론 개혁인 것처럼 떠들더니 무엇이 부끄럽고 두려워서 숨겼느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여야는 언론법 처리를 오는 27일까지 미루고 ‘8인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하루 만에 “합의가 안 되더라도 27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8인 협의체는 “합의가 아닌 협의 기구”라고도 했다. 언론법 발의와 강행 처리에 앞장선 김용민·김종민 의원 등 강경파를 협의체에 넣었다. 협의체를 허수아비로 만든 뒤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언론 7단체는 “8인 협의체는 장식품에 불과하다”며 협의체 불참을 선언했다. 역대 방송학회장들도 반대 성명을 냈다.

하지만 여당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시간을 끌며 비판 소나기만 피한 뒤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입장 표명을 피해오던 문재인 대통령은 “언론법을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는 야당 측 국회 부의장 요청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짜 뉴스가 전 세계적으로 횡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청와대는 “언론법과 바로 연결해 해석하지는 말라”고 했지만 결국 법안 강행에 힘을 실어준 것과 다름없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대통령이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비판을 받고도 언론재갈법을 방조하고 있다.

언론법은 최대 5배 징벌적 배상과 열람차단청구권, 언론에 떠넘긴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 애매모호한 법 조항으로 언론·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내 언론 단체나 법조·학계뿐 아니라 유엔과 국제 언론 단체 등이 모두 반대하고 있다. 여권과 북한을 빼곤 모두가 우려한다는 법이다. 그런데 여당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고 대통령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국가적 수치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