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시각) 친(親)러시아 반군이 통제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 러시아군 장갑차 등 군용 차량이 진입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가 21일 우크라이나에 군 병력을 진입시켰다.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 지역에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병력 파견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그 본질이 이웃 국가를 군사적으로 침략한 것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러시아 국영 보도기관들은 우크라이나가 먼저 공격했다고 주장하지만 조작된 뉴스였다. 우크라이나가 군사적으로 대응하면 러시아는 이를 빌미로 전면 공격에 나설 것이다.

러시아가 ‘평화’라는 이름으로 이웃 나라를 침략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08년 조지아 침공도 분리·독립을 추진하던 남오세티야에 평화 유지군을 파견한다며 시작했다. 조지아 정부군이 반격하자 이를 이유로 조지아에 대한 전면적 군사 공격을 했다. 결국 남오세티야는 러시아 영향력 아래에 들어갔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 합병 때도 러시아는 크림반도 내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보냈다.

1973년 베트남전 종전에 합의한 파리협정도 이름은 ‘평화협정’이었다. 미국과 남·북 베트남은 종전을 약속하고 미군은 철수했다. 협정 주역이었던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그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북베트남 협상 대표인 레둑토는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그 후 북베트남의 군사 공세가 시작됐고 2년 후 남베트남은 항복했다. 이것이 ‘평화 협정’의 결과였다.

평화는 소중한 가치이지만 국제 정치에선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나 구실로 흔히 이용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 중국, 북한 등 구공산권 국가들은 평화를 정치 전략의 도구로 삼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동안 ‘남북 평화’를 내세웠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됐다면서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두 번의 미·북 정상회담을 열었다. 모두 ‘평화’를 외쳤지만 김정은에게 평화의 뜻은 핵 폐기가 아니라 핵을 보유한 채 대북 제재를 허무는 것이었다. 같은 ‘평화’라는 말을 두고 생각은 정반대다. 대선이 끝나면 북한의 ‘평화 공세’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평화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고, 말이 아니라 힘으로 지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