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3회 국회(임시회) 6차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뉴시스

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에 국회 내 유일한 반도체 전문가인 양향자 의원이 빠지고 민주당에서 위장 탈당했던 민형배 의원이 선임됐다. 이 특위는 여당 7명, 야당 10명, 비교섭단체 소속 의원 1명으로 구성돼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첨단전략 산업 분야의 체계적인 지원 및 육성 입법을 논의한다. 한 자리뿐인 비교섭단체 소속 의원 몫은 신청서를 낸 의원 가운데 국회의장이 선임한다. 그런데 김진표 국회의장이 양향자 의원을 배제하고 민형배 의원을 선임했다는 것이다. 국회의장 측은 “양 의원은 국회 산자위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고, 기존 비교섭단체 의원들의 특위 배정 형평성을 고려해서 선임했다”고 한다. 거짓이자 어불성설이다.

지난해 민주당이 일방 통과시킨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때 민주당은 이 법안에 부정적이던 양 의원을 빼고 그 자리에 민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박아넣었다. 이 꼼수로 최장 90일이 걸리는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하고 검수완박 법안을 밀어붙였다. 당시 김 의장도 이 꼼수에 참여했다. 스스로 안건조정위에 들어가 위원장을 맡았다. 최연장자가 위원장을 맡는 관례를 이용한 것이다. 그 뒤 민주당 지지를 업고 국회의장 자리에 올랐다.

국회 첨단전략산업특위는 반도체 등 국가 미래가 달린 첨단산업과 관련된 제도와 법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해당 분야의 국내외 흐름을 꿰뚫는 전문가 의원이 있다면 최우선 배정해서 지식과 식견을 공유하고 나라 경제를 위해 더 나은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상식이다. 삼성전자 출신의 반도체 전문가 양 의원은 무소속 신분이지만 지난해 여당 반도체특위 위원장을 맡아 ‘K칩스법’(반도체특별법)을 발의한 사람이다. 더 이상의 적격이 없다.

하지만 거대 야당은 ‘반도체 지원은 대기업 지원’이라는 상투적인 논리만 거듭하면서 법안 논의를 뭉개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대만, 유럽 등이 반도체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도 양 의원이 상정한 반도체특별법은 넉 달이나 표류했다. 연말에 겨우 통과됐지만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증원 같은 핵심 내용은 빠졌다. 한국과 경쟁하는 대만의 경우, 반도체 지원법을 발의 두 달 만에 신속 처리했다. 정치적 이전투구에만 매달려 국가 경제는 나 몰라라 하는 우리나라 국회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민주당 출신이라고는 해도, 경제 관료 출신으로 경제 부총리까지 지낸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제 정치 인생 마지막 자리에서 나라 전체를 생각하며 최적의 특위를 구성할 책무가 있다. 더 이상 무엇을 하겠다고 이 중대한 시기에 반도체 전문가를 제치고 비전문가에다 위장 탈당까지 했던 의원을 임명하나. 실망을 넘어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