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66인, 찬성 169인, 반대 90인, 기권 7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은 23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매년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게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일방 처리했다. 쌀이 남아돌아 매년 10여 만t이 사료·주정용으로 처분되는데 쌀 매입에 매년 1조원 이상을 퍼붓겠다는 것이다. 길게 보면 농업을 위한 것도, 농민을 위한 것도 아니다. 실제로 쌀값 하락 우려 때문에 일부 농민 단체들도 반대했다. 민주당은 국회 상임위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위안부 재단 관련 비리로 출당된 무소속 윤미향 의원을 안건조정위에 넣는 꼼수를 썼다.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리자 다시 윤 의원을 이용해 본회의에 직접 회부했다.

민주당은 ‘식량 안보’라는 낡은 논리로 이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반대했던 일이다. 결국 내년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은 농민을 위해 이 법을 밀어붙였는데 대통령이 거부했다는 모양새를 만들려는 것이다. 농민들에게 생색내면서 대통령에겐 정치적 부담을 씌울 수 있는 묘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이런 법이 한두 개가 아니다. 민주당은 지난달 의사·간호사 간 갈등의 소지가 큰 간호사법 개정안 등 7개 법안을 일방적으로 본회의에 올렸다. 공영방송 이사 구성과 사장 임명 방식을 야당에 유리하게 바꾼 방송법 개정안도 직회부했다.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화물연대에 특혜를 주는 안전운임제 관련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도 조만간 본회의에 올리겠다고 한다. 민주당 마음대로 본회의 직회부가 가능한 상임위가 6개나 돼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법안이 일방 처리될지 알 수 없다. 대통령에게 거부권 부담을 지우면서 지지층이 좋아할 법안들을 난사하듯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이에 대해 거부권을 모두 행사한다면 10번이 넘을 수도 있다. 거부권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상임위 상시 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행사한 게 마지막이다. 한 대통령이 임기 중 기껏해야 한두 번 행사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입법 폭주를 막기 위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신기록을 세워야 할 판이다. 정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