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시절 ‘친일파’ 낙인이 찍힌 국가유공자들. 윗줄 왼쪽부터 백선엽 장군, 김백일 국방경비대 3연대장, 김석범 2대 해병대사령관, 김홍준 국방경비대 4연대 창설 중대장, 백낙준 초대 연세대 총장, 백홍석 초대 육군 특별부대사령관, 아랫줄 왼쪽부터 송석하 전 국방연구원장, 신응균 초대 국방과학연구소장, 신태영 4대 국방부 장관, 신현준 초대 해병대사령관, 이응준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종찬 8대 국방부 장관. /그래픽=백형선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3월 보훈처와 국방부는 현충원에 잠든 호국 영웅과 국가유공자 11명의 안장 기록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넣었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니 주먹구구가 따로 없다. 보훈처 수뇌부가 ‘윗집 오더’라며 밀어붙였고, 국방부는 보훈처의 협조 공문에 ‘동의한다’고 답장했다. ‘사자(死者) 명예훼손 소지가 크다’ ‘나라 지킨 선배들 명예를 짓밟는 것’이란 내부 반발을 묵살하고 일사천리로 ‘친일파 딱지’를 붙였다. 똑같은 조치가 2020년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이 별세했을 때도 취해졌다. 법적 절차는커녕 최소한의 사회적 공론화 과정도 없이 군사작전 하듯 해치웠다.

문 정부가 이런 일을 벌인 유일한 근거는 노무현 정부 시절 꾸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친일파 1005인’ 명단이다. 이 위원회는 특정 정파 성향 인사 위주로 구성돼 출범 당시부터 편향성 논란이 컸다. 친일파 명단은 2009년 발표와 동시에 불공정·편파 시비에 휘말렸다. 좌파 인사들은 구체적 친일 행적이 확인되는데도 명단에서 빠진 반면, 우파 인사들은 특정 조직·부대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 낙인이 찍힌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일을 관료들이 알아서 추진했을 리 없다. 2019년 3·1절 기념사에서 문 전 대통령은 “친일 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 둔 숙제”라고 했다. 이것이 신호탄이었다. 보훈처와 국방부가 친일파 딱지 붙이기에 나섰고, 민주당과 광복회장은 ‘친일파 파묘’를 주장했다. 친여 단체들은 현충원에 몰려가 봉분과 묘비를 짓밟고 가축 배설물을 살포했다. 현대판 부관참시와 패륜이 도처에서 자행됐다.

반면 좌익 활동으로 친북 논란을 일으킨 인사 20여 명은 문 정부 시절 무더기로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역대 보훈 심사에서 6차례 탈락했던 손혜원 전 의원 부친도 그중 하나다. 문 전 대통령은 현충일에 6·25 남침 공로로 북에서 훈장을 받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인 듯 칭송했다. 나라를 세우고 김일성 침략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친일파로 몰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북한 편에 섰던 인사들을 애국자로 둔갑시켰다. 과연 이들의 마음속 조국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