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캠프 데이비드 회담은 명실상부하게 세계 질서의 한 주도국으로 부상한 한국의 위상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밝은 빛은 그림자도 만든다. 특히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한국 입장에선 두 강대국과의 관계가 큰 과제다. 한·미·일 연대는 국제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중국의 행태를 우려하면서 남중국해와 대만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를 비판했다. 3국이 중국을 직접 거명한 것은 처음이다. 한·미·일은 또 러시아 침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단합된 지원을 추진한다고 했다. 해외 정보 조작과 감시 기술 오용, 허위 정보 대응을 위한 협력도 명시했다. 모두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조치들이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한·미·일 공동 회견 3시간 만에 대만 인근 해상에서 군용기와 군함을 동원한 해상 훈련을 했다. 대만해협 중간선을 침범하기도 했다. 또 20일부터 8일간 우리 서해에서 군사훈련을 한다고 했다. 중국 측은 “한·일은 미국을 위한 장기판 말 역할을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지난 30년간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을 펴 큰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한국으로선 미국 주도의 경제·안보 블록에 참여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중국이 가진 경제·안보적 위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한때 우리 수출의 25%를 차지한 최대 교역국이다. 이 사실은 앞으로 상당 기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라는 카드를 활용해 우리를 괴롭힐 수 있는 많은 수단을 갖고 있다. 단순히 김정은 정권을 지원하는 것에서 나아가 북에 첨단 무기를 제공해 우리 안보를 직접 위협할 수 있다. 중·러 견제를 명시한 한·미·일 연대는 우리 외교의 큰 기회인 동시에 부담이다.

한·미·일 연대 강화가 중·러와의 긴장으로 이어지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 간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중국과 러시아에도 한·미·일은 중요한 국가다. 우리가 한·미·일 협력과 동시에 중국, 러시아와의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중국도 한국산 반도체와 첨단 부품·설비가 필요하다. 한국과 부딪치면 이익보다 손해가 많다.

당장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 포괄적 동반자 협정(RCEP)에 계속 참여하면서 경제 협력을 늘려야 한다. 우리는 한·중·일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연내 3국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국방·외교 장관 회담 등 대화 채널도 다양화해야 한다. 한·미 관계 강화를 한·중 관계 개선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외교적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