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김규현 국정원장과 권춘택 1차장·김수연 2차장 사표를 수리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신임 1차장에 홍장원 전 영국 공사를 임명해 당분간 원장 직무대행을 맡기기로 했다. 국정원 2차장에는 황원진 전 북한정보국장이 임명됐다. 사진은 지난 1일 국정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권춘택 1차장(왼쪽부터), 김 원장, 김수연 2차장.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김규현 국가정보원장과 해외 담당 1차장, 대북 담당 2차장을 전격 경질했다. 북한이 군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하고 9·19 군사 합의를 전면 파기한 상황에서 국정원 지휘부가 한꺼번에 교체된 것이다. 지난 6월 이후 내부 인사 갈등이 연이어 표출된 데 대한 지휘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한다. 최근 김 전 원장은 권춘택 전 차장에 대해 직무 감찰을 지시했는데, 인사 잡음이 보도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보안이 생명인 정보기관의 내부 문제가 외부에 표출된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현 정부 들어 국정원은 끊임없는 인사 잡음에 시달렸다. 윤 대통령의 측근인 검찰 출신 기조실장은 임명 4개월 만에 돌연 사퇴했다. 전 정부 인사를 대거 물갈이하려는 김 전 원장 측과의 인사 갈등 때문이란 말이 무성했다. 지난 6월엔 대통령 재가를 받은 김 전 원장의 인사안이 번복됐다. 김 전 원장 측근이 부적절하게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국가 안보에 헌신하라”고 지시했지만 최근 갈등이 재연됐다. 국정원은 정권 교체기마다 인적 교체로 몸살을 앓았지만 1년 반이 넘도록 인사 갈등이 이어진 것은 전례가 드물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고도화하고 군사위성까지 쏘아올린 상황에서 대북 정보력을 키우기는커녕 내부 싸움에만 빠져 있었던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 정부 때 정보기관이 아니라 남북 대화 창구로 변질됐다. 북이 핵 개발을 계속하는 것을 알면서도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했다. 국정원장은 남북 정상회담 현장에서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대북 정보력이 급격히 떨어져 2018년 김정은의 특별열차가 중국에 들어간 것도 몰랐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땐 첩보 보고서를 무단 삭제했고 북 귀순 어민은 강제 북송했다. 전국에 북한 간첩단이 활개를 치는데도 국정원 수뇌부는 북한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수사를 막았다.

지금 북한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군사위성을 쏘아올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까지 고도화하려 한다. 군사합의 파기 이후 언제 천안함·연평도와 같은 도발을 해올지 모른다. 이를 막기 위해 대북 정보 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할 때다. 전 정권이 없앤 간첩 수사권도 정상화해야 한다. 신속한 후속 인사를 통해 내부 갈등을 잠재우고 대북 정보 역량 강화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