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왼쪽)가 지난 9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이재명 대표의 단식투쟁천막을 방문해 이 대표와 대화를 하고 있다./뉴시스

위안부 할머니 돈을 빼돌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윤미향 의원이 출판기념회에서 “2020년 8월 검찰 조사 받은 뒤 회계 자료를 들고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찾아갔더니 이 대표가 ‘당신네들은 왜 그런 자료를 다 남겨놨어. 우린 운동하면서 다 태웠는데’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시 윤 의원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료를 불태웠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왜 안 태웠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증거 인멸은 대표적 사법 방해 행위다. 당시 집권당 대표가 증거 인멸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도 충격적이고, 국회의원이 그 일을 공개된 장소에서 말할 정도로 무감각하다는 것도 놀랍다.

이 전 대표는 윤 의원 관련 의혹이 제기되던 2020년 5월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신상 털기식 의혹 제기에 굴복해선 안 된다”고 했다. 범죄 의혹은 문제가 아니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잘못됐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석 달 뒤엔 “왜 자료를 안 태웠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자료만 없애면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가릴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 전 대표는 명백한 물증이 나와 대법원 유죄 판결까지 받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도 무죄라며 궤변 몰이에 앞장선 사람이다. 야권의 ‘대부’ 격인 그의 말은 민주당 일부 세력에 스며 있는 운동권식 사법 방해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그동안 무엇을 감추고 태웠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전 대표가 정치적으로 후원한다는 이재명 대표 관련 사건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전 대표와 이 대표 양쪽 모두의 측근인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는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을 이재명 대표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가 번복했다. 민주당이 검찰청에서 연좌 시위를 벌이고, 이 대표 측근 의원이 이 전 부지사 아내·측근과 접촉한 직후였다. 불법 경선 자금 8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법정에서 자신의 행적을 조작한 알리바이를 제시했다가 들통났다. 이 대표 측근이었던 이들에게 ‘감시용’ 변호사가 붙은 의혹도 제기됐다. 증거 인멸을 조언했다는 이해찬 전 대표의 말을 보면 이런 일들을 다 우연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