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수출한 K2 전차와 K9 자주포가 2022년 12월 폴란드 북부의 그디니아 항구에 도착했다. 1차 수출 물량이 현지에 도착한 직후 열린 인수 행사인데도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등 정부와 군 고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AFP 연합뉴스

국내 기업들이 폴란드와 맺은 30조원 규모 무기 수출이 국회의 입법 태만 탓에 자칫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폴란드의 무기 수입 대금을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을 통해 대출해 주게 돼 있고 추가 대출을 하려면 수은 자본금을 증자해야 하는데, 국회가 관련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급히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2022년 7월 한국의 FA-50 전투기 48대, K9 자주포 672문, K2 전차 980대를 도입하기로 기본 계약을 맺었다. 한 달 뒤 폴란드는 무기 17조원어치를 먼저 수입하는 1차 계약을 맺었는데, 수은과 무역보험공사가 각각 6조원을 빌려주기로 약정했다. 문제는 최대 30조원어치인 나머지 물량을 공급하는 2차 계약 단계에서 발생했다. 동일 차주(借主)에게 자기자본의 40%(7조3600억원)까지만 대출할 수 있게 돼 있는 수은법 탓에 수은의 추가 대출 여분이 1조3600억원밖에 안 돼 2차 자금 지원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국회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여야 의원들이 수은 자본금을 15조원에서 25조~35조원으로 늘리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총선을 앞두고 정쟁에만 정신이 팔린 여야가 이 법안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특검 등 정략 법안에 쏟은 힘의 10분의 1만 써도 이 법안은 벌써 처리됐을 것이다. 폴란드 무기 수출을 계기로 K방위산업의 도약이 힘을 받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는 직무 유기다.

세계의 무기 수입국들은 폴란드에 가성비 좋은 고품질 무기를 신속히 대량 공급한 K방산의 역량에 놀라며, 한국산 방산 제품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목표로 설정한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이 되기 위해서라도 수은의 수출 금융 지원 한도를 대폭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 향후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건설 사업,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등 초대형 국제 인프라 사업의 한국 기업 참여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총선 분위기에 휩쓸려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수은법 개정안이 자동 폐기될 수도 있다. 1~2월 임시 국회 회기 때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