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 오픈AI CEO./AP 연합뉴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가 AI용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겠다며 최대 7조달러(약 9300조원)의 자금 조달에 나섰다고 한다. 한국 GDP(국내총생산)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AI 혁신을 주도하는 오픈AI가 천문학적 투자를 통해 직접 반도체 개발까지 하게 된다면 반도체 산업의 판도는 대번에 뒤집힐 것이다. 올트먼은 AI를 훈련·운용할 수 있는 고성능 반도체의 생산 시설을 수년 안에 10여 곳 건설한 뒤 파운드리(위탁 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에 운영을 맡기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한국 반도체가 TSMC를 따라가기 힘들 만큼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AI 시대에 반도체 패권 전쟁은 가공할 규모와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 설계 최강국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하고 자국 내 여러 곳에 반도체 제조 클러스터를 조성 중이다. 최근에는 50억달러(약 6조6000억원)를 투자해 국립 반도체 기술 진흥 센터도 출범시켰다. 대만은 TSMC의 신공장 건설을 국가 존망이 달린 프로젝트로 보고 총통부터 각 부처 장관과 지자체장이 똘똘 뭉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도 2조엔(약 18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제공하며 TSMC를 유치해 구마모토현을 반도체 클러스터로 조성 중이다. 지난 2021년 착공한 TSMC의 구마모토 1공장은 3년도 안 돼 건설돼 다음 주 준공 예정이다. 2공장 건설 계획도 발표했다. 놀라운 속도전이다.

기업 판도도 바뀌고 있다. AI 반도체의 80%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는 기업 가치가 급증하면서 시가총액 2조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442조원)의 5배가 넘는다. 반도체 업황 부진 속에서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58%로 늘린 대만 TSMC는 지난해 매출이 삼성전자·인텔을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 반도체 영업이익은 81억달러(약 10조9000억원)로 삼성의 4배가 넘는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이지만 그동안 온갖 정치·사법 리스크와 반(反)기업 정서에 휘둘려왔다. 미국·일본·대만은 3~4년 만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데 우리는 온갖 규제에 묶여 그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 부지를 선정했지만 8년 만인 2027년에야 가동될 예정이다. 글로벌 업계가 숨가쁜 속도로 재편되는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3년 5개월 동안 사법 리스크에 묶여 미래 대응도 늦었다. 1심에서 혐의 19건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애당초 무리한 기소를 강행했던 검찰이 또 항소했다. AI 혁신이 무서운 속도로 세상을 바꾸는데 한국의 시계만 멈춰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