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주요 대형병원이 최소 30%에서 50%가량 수술을 줄이면서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에 대응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한 대형병원이 평소보다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상훈 기자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가 주요 100개 병원 전공의의 71.2%인 881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지금까지 전공의 6228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그래도 복귀하지 않으면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릴 방침이다. 전공의들이 대거 근무지를 이탈함에 따라 우려했던 환자 피해가 나오고 있다. 일방적인 진료 예약 취소, 무기한 수술 연기 등을 당했다고 접수한 피해 사례는 20일까지 92건에 달했다.

의사들이 현장을 떠나 환자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 의사 윤리 측면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반윤리적인 결정을 너무 쉽게 하고, 또 다수의 전공의들이 서슴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데 많은 국민들이 놀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많이 배우고 소득도 최상위층에 속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정부는 의대 증원과 함께 필수 의료에 대한 보수 인상과 소송 부담 완화도 발표했다. 하지만 말뿐이고 구체안을 내놓지 않으니 신뢰를 얻기 힘들다. 산부인과·소아과·응급의학과 등 필수 진료과에 의사들이 가지 않는 것은 일은 힘든데 돈은 더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필수 의료일수록 소송 부담도 크다.

우리나라 건보에서 의사들에게 주는 수가는 6000여 개 의료 행위에 대해 시간·위험도 등에 따라 일일이 점수를 매겨 보상하는 구조다. 그런데 수십 년간 수가 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의사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달라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오늘의 필수 의료 의사 부족 사태다. 필수 의료를 중심으로 수가를 크게 올려야 하는 진료 항목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의대의 대폭적 증원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다른 중요한 조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현장 의사들이 바로 체감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수가 인상안을 마련해 발표해야 한다. 의료 사고 시 고의나 중대 과실이 아니라면 의사들의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완화해 주는 정책도 좀 더 세부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하면서 의사들만 압박하면 사태를 장기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