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의료농단 저지 전국의사대표자회의에서 투쟁 선포를 하고 있다. /뉴스1

대한의사협회가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 중단을 요구하며 오는 18일 전면 휴진하기로 결의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취소를 요구하며 17일부터 무기한 전체 휴진(총파업)에 들어가기로 한 데 이어 개원의들이 주축인 의협도 휴진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진료 대신 거리로 나가 총궐기대회를 열겠다고 한다. 의대 증원 확정 이후 의·정 간에 합리적인 후속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했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더 답답한 것은 의협이 무리한 조건을 내걸고 있다는 것이다. 의협은 내년 의대 정원 증원 중단을 요구하지만 이미 증원 계획이 대학별로 확정돼 입시 요강까지 발표됐는데 없던 일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해 정부가 내린 업무개시 명령 등을 ‘철회’가 아니라 ‘취소’하라는 서울의대 교수들 요구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앞서 업무개시 명령 등을 철회하고, 복귀한 전공의는 면허정지 행정처분 절차도 중단하겠다고 했다. 비판을 감수하면서 한발 양보한 것이다. 그런데 행정 처분을 취소해 아예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은 정부에 굴복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요구를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전공의 1만여 명 이탈로 의료 공백이 넉 달 가까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의료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의대 교수들과 묵묵히 의료 현장을 지킨 의사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마저 현장을 떠나면 의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서울대병원장이 집단 휴진 불허 방침을 밝히고 서울대 교수회가 파업 자제를 호소한 것도 그런 우려 때문일 것이다.

의사들이 환자 생명을 볼모로 집단 투쟁을 벌이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환자 치료는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 자체가 의사의 존재 목적이다. 의사들로선 의대 증원에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문제 제기도 환자 곁을 지키면서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국민도 의사들 요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