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진영

세계은행이 고소득 국가로 도약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중진국 함정’을 극복한 성공 사례로 한국을 지목하며 “성장의 수퍼스타”라고 평가했다. 세계은행은 중진국 함정을 주제로 한 보고서에서 한국이 투자, 기술 도입, 혁신 등의 전략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며 “모든 중진국 정책 입안자들이 반드시 숙지해야 할 필독서”라고 했다.

세계은행의 평가는 그러나 ‘과거형’이 되어 가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은 ‘성장의 수퍼스타’와는 거리가 멀다. 성공의 비결이던 개방·혁신·투지는 찾아보기 어렵고 성장이 멈춘 ‘선진국병’ 환자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까지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였던 한국 경제가 2000년대 들어선 5%대, 2010년대엔 3%대, 2020년대 이후엔 2%대로 떨어졌다. 물가 상승 없이 달성 가능한 잠재성장률은 2030년대 이후 1%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고령화로 저성장이 만성화되는데 성장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노동·교육·연금 등의 구조 개혁은 지지부진하다. 고속 성장을 견인했던 국가 경쟁력이 무너지고, 돌파구를 열어야 할 정치권은 극단적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정쟁으로 날을 새우고 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은 한국 경제의 최대 강점 중 하나였던 재정 건전성까지 허물어 일찌감치 ‘국가 부채 1000조원’ 시대를 열었다.

27년 전 한국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하고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자마자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다. 온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이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 끝에 위기를 탈출해 소득 3만달러를 달성하며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지만 다시 구조적 저성장 침체 증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낡은 제도와 관습의 창조적 파괴”가 경제성장을 이끈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선진국병’에 빠져 구조 개혁의 골든 타임을 놓치면 한국 경제의 성공담은 흘러간 과거 얘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