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경기침체 공포 탓에 코스피 지수가 3.65% 하락한 지난 8월 2일 오후, 서울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고개를 떨군 채 고민에 빠져 있다. /연합뉴스

미국발 경기 침체 공포가 지난 2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를 ‘검은 금요일’로 만들었다. 한국 증시는 코스피 3.65%, 코스닥 4.2%씩 급락했고, 일본(5.81%), 대만(4.43%) 증시도 2020년 초 코로나 사태 이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미국의 제조업 경기와 내수가 악화되고 인텔이 대량 감원을 발표하는 등 빅테크 기업의 성장 동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불안감이 악재로 작용해 글로벌 주식 투매를 촉발했다.

증시뿐 아니다. 반도체·자동차 등의 수출은 호조지만 내수 침체가 심화되면서 2분기 한국 경제는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0.2%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서울 집값이 19주 연속 오르고 그 여파가 수도권으로 번지는 등 집값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일부 투기 수요까지 가세하며 앞 정부 시절의 ‘미친 집값’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전자상거래 4·5위 업체인 티몬과 위메프의 지급 중단 사태는 나날이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소상공인의 대규모 연쇄 부도 사태로 이어져 자영업 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

내수 부진, 집값 급등, 자영업 타격에서 미국발 금융 불안까지 나라 안팎의 경제 리스크가 동시다발적으로 닥쳐오고 있지만, 이에 대응해 구사할 수 있는 재정·금융 등의 정책 대응 수단은 제한돼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나랏빚을 400조원 이상 불려 ‘1000조원 국가 부채’를 물려준 탓에, 윤석열 정부는 재정 확대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 내수가 부진하면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시켜야 하지만 작년보다 10조원 이상 줄어든 세수 부족 탓에 추경 편성도 어렵다.

경기 진작을 위한 금리 인하 카드도 집값과 가계 부채 문제에 발목 잡혀 있다. 금리를 내리면 집값 급등세에 기름을 끼얹고 가계 빚을 팽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미국보다 정책금리가 2%포인트나 낮은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환율 급등을 유발해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책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성장률을 끌어올리면서 물가와 집값을 잡고 가계 빚은 줄이는 ‘신의 한 수’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묘책은 없다. 다만 대통령실과 경제 부처, 한국은행 등이 긴밀한 공조를 통해 정책 조합을 짜내면,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정책 목표 근사치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시험대에 오른 경제팀이 정교하고 면밀한 대응으로 동시다발적 리스크를 헤쳐나가는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