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증시가 대폭락했다. 코스피 지수는 234.64포인트(8.77%) 내린 2,441.55, 코스닥 지수는 88.05포인트(11.30%) 내린 691.28에 장을 마감했다./뉴스1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에다 중동 정세 불안이 겹치면서 한국 증시가 사상 최대 폭락을 기록하며 시장을 공포에 빠트렸다. 코스피 지수는 234.64포인트 내려 1983년 코스피 지수 산정이래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하락률(8.77%)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가장 많이 하락했다. 코스닥은 11.3% 폭락했다. 주식 거래를 일시 중단시키는 사이드카·서킷브레이크가 잇따라 발동됐지만 패닉 셀(공포심에 따른 투매)을 막지 못하며 시가총액 235조원이 증발했다. 시총 1위 삼성전자 주가도 10% 이상 폭락했다.

일본 닛케이 지수는 무려 12.4% 떨어져 일본 증시 역사상 최대 폭락을 기록했고, 대만도 마이너스 8.35%의 대폭락장이 펼쳐졌다. 다만 일본·대만은 올해 들어 주가가 연일 신고가를 갈아 치우며 과열 양상을 보여왔던 반면 한국은 그동안 큰 상승세가 없었는데도 동반 폭락해 외부 충격에 약한 한국 증시의 취약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중국(-1.54%), 홍콩(-1.46%)은 낙폭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중국보다 대미 수출 비중이 큰 한국·일본·대만이 미국 경기 침체에 악영향을 받을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하루 사이 외국인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주식 현물·선물을 2조2000억원 이상 순매도하며 매물 폭탄을 쏟아냈다. 금융 불안 국면이 벌어지면 글로벌 투자자들은 취약한 국가부터 빠져나간다. 정부가 연초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성과가 없다. 기초 체력이 허약한 한국 증시의 취약성이 외국인 자금의 이탈을 부추길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이번과 같은 대폭락장에서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할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이 폭락장을 주도할 때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방어 대신 매도세에 가세해 낙폭을 더 키우는 데 일조했다. 정부의 대응 능력도 시장의 의구심을 부르고 있다. 이날 금융 당국은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앞으로도 정부가 내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을 해소할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금융·증시 불안을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