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뉴스1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으로 온 사회가 들썩인 27일에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MBC 문제’로 공방을 벌였다고 한다. 과방위는 딥페이크 문제와 관련한 국회 소관 상임위 중 하나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 민주당 이재명 대표까지 나서 강력한 딥페이크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그런데 정작 이날 과방위 전체 회의에선 MBC 문제를 놓고 정쟁만 벌인 것이다. 의원 두 명만 딥페이크 악용 방지에 대해 질의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생들이 동문 여성들 사진으로 딥페이크 음란물을 만들어 퍼뜨린 사건이 불거진 게 지난 5월이다. 이어 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고, 이젠 여군·교사는 물론 중·고교생 등 미성년자들도 피해자가 되면서 학부모들까지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22대 국회 개원 이후 과방위에선 MBC와 방통위원장 문제로 여야가 대립하는 바람에 정작 이 문제는 한 번도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다. AI 기술을 이용해 만든 영상 등에 특정 표지(워터마크)를 의무적으로 넣도록 한 법안도 이번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지만 논의 테이블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AI는 산업적으로 육성해야 하지만 규제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딥페이크도 AI로 만든 가짜 콘텐츠다. 이 때문에 지금 세계는 AI 육성과 가이드라인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2021년 AI 이니셔티브법’을 만들었고, 테크 기업이 집결한 캘리포니아주는 AI 피해의 책임을 개발사에 지우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은 AI 위험 수준에 따른 차등 규제를 담은 ‘AI법’을 세계 최초로 통과시켰다. AI 발전 속도와 범죄 양상을 볼 때 우리도 산업적 지원과 사회적 안전을 위한 규범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포괄할 ‘AI 기본법’조차 없다. 무엇보다 국회, 특히 과방위가 책임을 방기한 탓이 크다.

과방위는 그동안 총 18번 전체 회의를 했지만 여야 합의로 법안을 처리한 사례가 없고, 관련 법안 소위도 열지 못했다. AI 기본법 외에도 소프트웨어진흥법, 이공계 지원 특별법 등 국가를 위해 필요한 법안은 다 뒷전으로 미루고 눈만 뜨면 MBC 문제로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