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로 청소년 강의를 다닌다. 교육청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진행하는 정책 강의다. 예전엔 가르치는 사람이 “배운다”고 말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청소년 강의를 다니면서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달았다. 세대가 다른 데서 오는 경험 차이와 신선한 시각이 크고 작은 통찰을 준 덕분이다.
얼마 전에는 수도권 한 교육지원청에서 실시한 정책 강의에 갔다가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쉬는 시간에 몇몇 초등학생이 낄낄거리며 웃고 있기에 가서 봤더니 자신들이 코딩으로 만든 게임의 캐릭터 색깔을 바꿔가며 놀고 있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코딩할 줄 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기껏해야 홈페이지 만드는 정도겠지 싶었다. 능수능란하게 코딩 프로그램을 다루는 그들을 본 순간, 파워포인트(PPT)나 엑셀 하나 다루지 못해 후배들에게 지시 아닌 지시를 해야 했던 우리네 상사들이 떠올랐다. 이 친구들이 사회에 나섰을 때 지금 내가 가진 기술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게 될 것인가. 청년기에 이런 두려움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하루가 멀다고 신기술이 등장하는 시대, 30대인 나조차도 그 흐름을 따라잡기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가상 화폐와 블록 체인으로 세상이 떠들썩하길래 기껏 공부해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메타버스나 NFT(대체 불가능 토큰) 같은 게 등장한다. 이 기술들을 어렴풋이라도 모르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런 까닭에 서점 매대에 잔뜩 쌓인 관련 서적들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큰 압박감을 준다.
하지만 새로 등장해 유행하는 기술들에 근본적인 회의감을 갖고 있다. 2007년 아이폰을 위시로 한 스마트폰의 등장 정도를 제외하면 그것들로 인해 일상이 혁명적으로 뒤바뀐 경험을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상 화폐가 분권을 가져오네 어쩌네 했지만, 아닌 말로 코인으로 투기판 만들고 부패한 정치인들이 재산 은닉하는 데 활용되었던 것 말고 우리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메타버스가 처음 유행할 땐 영화 ‘매트릭스’ 같은 세상이 열릴 거라며 난리였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그게 20년도 더 전에 컴퓨터에 전화선 꽂고 즐겼던 게임 ‘바람의 나라’와 무엇이 다른 건가 싶다.
용어에서 오는 ‘힙(hip)’함 때문일까. 정치까지도 그 흐름에 맹목적으로 편승하려는 현실은 씁쓸하다. 전국 지방의회들은 2~3년 전부터 유사한 내용의 ‘4차 산업혁명 촉진 조례’를 우후죽순 내놓고 있다. 한국의희망 양향자 의원은 “블록 체인 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더러는 개념을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정책을 추진하기도 한다. 일례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 한 기초단체장 후보자는 “메타버스 캠퍼스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는데, 토론회에서 상대 후보로부터 “메타버스가 뭐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해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정치인들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메타버스‧NFT 같은 기술이 유행할 때 호들갑을 떠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 기술들이 갖는 미래 지향적 이미지를 차용해 기성 정치권과 차별화를 도모하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참신하고 세련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적어도 청년층에선 거의 없다. 작위적인 새로움은 촌스러움을 동반할 뿐이다.
정치와 행정이 시대 변화에 너무 뒤떨어져 있어 일본처럼 도장과 팩스 없인 일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그건 그 나름대로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게 유행을 좇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블록 체인 정당을 만들고 NFT로 후원금을 받는 것보다는 키오스크나 스마트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을 위해 세심하게 탈(脫)디지털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하는 게 훨씬 세련돼 보인다. AI로 그린 어설픈 이미지 파일보다 고전 명화 같은 정치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