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신원 미상 남성에게 습격을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들섬에 헬기를 통해 도착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뉴스1

세종시에서 2년간 거주하면서 행정수도 이전과 지방 의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먼저 세종시에 대통령실이나 국회가 옮겨오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 병원 때문이다. 2020년 7월 충남대병원 분원이 문을 열기까지 세종시에는 대형 종합병원이 없었다. 지금도 병상수는 본원의 3분의 1(500개)에 불과하다. 북한의 국지 도발이나 테러, 재난 상황에 대한 의료 대책이 없는데, 국가 중추 시설을 들일 리 만무했다. 서울 대형 종합병원만 애정하는 정치인들이 옮겨오실 리도 만무했다.

의료 격차가 무엇인지도 몸으로 알게 됐다. 2019년 교통사고를 당해 검사와 치료가 필요했는데, CT를 찍을 수 있는 대형 병원이 없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형외과 의원도 대중교통으로 30분이 걸렸다. 아프리카 출장을 급히 가야 하는데, 황열병·말라리아 예방접종을 하는 곳이 없어 서울로 출장을 가야 하기도 했다. 젊은 독신 남성도 불편한데, 자녀가 있는 가족이면 오죽할까 싶었다. 지금도 세종시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1.34명·2023년 2분기 기준)는 전국 시도 가운데 꼴찌다. 서울(3.54명)의 5분의 2 수준이다. 혁신도시의 경우 정주 여건을 묻는 조사에서 의료 서비스는 불만도가 높은 항목 중 하나다. 시·군 행정구역 경계선의 허허벌판에 조성된 탓에 종합병원 가기도 쉽지 않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과 뒤이은 ‘부산대 패싱’ 논란을 보면서 몇 년 전 세종시에서 겪었던 일들을 다시 떠올렸다. 이 대표의 석연치 않은 전원(轉院) 과정과 “잘하는 병원에서 해야 할 것”(정청래 의원)이라며 강변하는 민주당의 행태를 보면서다. 민주당은 세종시로 국회를 비롯한 다른 정부 기관을 옮겨 행정수도를 완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도 지방거점국립대 산하 병원을 벗어나 어떻게든 서울로 향하는 모습은 그들이 결코 지방 도시에 살 의향이 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이 대표가 당한 흉기 테러가 다소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 건 부적절한 행동 때문만이 아니다. 이 대표는 그가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 결정권이 없었다. 과잉 행동을 한 측근들의 문제로 축소시킬 수 있었단 얘기다. 또 그는 정치 테러의 피해자다. 거센 역풍이 불게 된 원인은 따로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에 대한 민주당의 이중적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2000년대부터 줄곧 지방을 정책 의제의 전면에 내세웠다. 한국 경제가 고도화되면서 소외되는 지방 경제에 대한 배려와 함께 충청도나 경상남도 등으로 지지 기반을 넓히겠다는 정치적 계산도 있었다. 가령 지방을 살리기 위해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을 지방에 내려 보내 신도시를 만들고, 의료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특정 지역에서만 근무할 수 있는 지역의사제를 도입하는 등 규제를 늘리는 방식이었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정부 개입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그래도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냈던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었다.

정책은 신뢰가 핵심이다. 이해 당사자가 여럿이고,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며, 정책 수단이나 효과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정책을 펴느냐 못지않게 정책을 펴는 사람이 어떤 평가를 받는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민주당은 다른 곳에서 수술이 어려운 부상도 아닌데, 응급의료헬기까지 써가며 서울행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됐다. 이들이 내놓은 지방 정책을 신뢰할 유권자가 몇이나 될까. 부산대 패싱 논란의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