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가족 식사에서 어머니는 ‘당근’ 얘기만 했다. 어머니의 당근은 카레에 넣어 먹는 야채가 아니라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이었다. 지난 한 해 당근에서 스마트워치와 블루투스 이어폰을 두어 번 사고팔았고, 충전기 같은 액세서리를 따로 구하거나 블루투스 이어폰을 한 쪽씩 잃어버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계속 이 앱을 이용했단다. 1년에 걸친 어머니의 당근 사용기는 이렇다.

일단 대면 거래만 했다. 첫 거래 상대는 손주뻘인 중학생. 그는 딱 봐도 ‘초짜’ 티가 나는 어머니에게 “물건을 받기 전에 돈을 보내지 말라” “계좌번호를 함부로 알려주지 말라”는 등의 조언을 해줬다. 그 이후 거래자들은 자식보다도 한참 어린 20~30대였다. 한 청년은 어머니에게 “스마트워치를 직접 사용하느냐”고 물었고, 송금 앱으로 돈을 보내자 “이런 것도 쓸 줄 알느냐. 현금 거래할 줄 알았다”고 했다. 한 거래자는 술에 취한 듯 불콰한 안색으로 비틀비틀 걸어오다가 어머니를 보고 몸을 바로 세운 뒤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당근(중고 거래)하러 나온 할머니를 보고 술이 확 깬 것 같더라”며 어머니가 웃었다.

가장 인상에 남은 거래자는 스마트워치를 판 30대 남성이었다. 그는 “아기를 보는 아내 때문에 집에 빨리 들어가야 한다”며 “기기 사용법을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바로 떴다. 이미 거래가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어머니는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집으로 가는 길에 스마트워치 사용법을 설명해주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냈고, 다음 날 유튜브를 봐도 모르는 부분을 설명해주겠다고 연락을 했다.

당근에서 10~30대까지 만나본 어머니는 “또래 할머니끼리 모이면 ‘요즘 애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책임감이 없어 믿을 수가 없고 컴퓨터랑 휴대폰만 들여다봐서 대면 관계에 서투르다’고 흉을 본다”며 “내가 운이 좋은 건지 몰라도 당근을 통해 만난 요즘 애들은 예의가 바르고 정직하며 생판 처음 보는 사람도 도와주려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다들 요즘 애들이랑 말 한마디 안 해보고 하는 얘길 거야.”

어머니가 언급한 ‘또래 할머니들의 모임’과 비슷한 집단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어디에나 있는데, 요새는 주로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2022년 대선이 끝난 후 두세 달에 걸쳐 ‘2022 다시 쓰는 젠더 리포트’라는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당시 20~30대 남성이 모인 커뮤니티(이하 남초), 20~30대 여성 전용 커뮤니티(여초)를 들여다보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남초와 여초는 각각 ‘젠더 기사에 몰려와서 댓글 쓰는 여자들은 뚱뚱하고 못 생겼다’ ‘한국 남자랑 결혼하면 여자 인생 망한다’ 같은 글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그때 궁금했던 것은 남초에선 젠더 기사에 댓글 단 사람이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인지 확인한 것일까, 여초에선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해보고 여자의 인생이 망한다고 단정 짓는 것인가였다. 실제로 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물어봤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인터넷, 소셜미디어에다 인공지능(AI)까지 있는 요즘, 세상 다 살아본 것만 같고, 세상 모르는 게 없는 것만 같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페이스북을 열면 여행지나 음식의 사진과 동영상이 쏟아지고 연예인·정치인과 같은 유명인이 등장해 다정하게 말도 걸어준다. 먹어보지도 않은 음식은 이미 먹어본 듯 맛있는 것 같고, 가보지도 않은 여행지가 이미 가본 듯 환상적인 것처럼 느껴지고, 만나본 적도 없는 유명인이 친구인 양 친밀하다. 이 중 진짜 맛있고, 환상적이고, 친구 같은 것은 얼마나 될까.

어머니는 “애초에 당근에 올라온 사진과 설명이 미덥지 못해 판매자를 만나러 나갔다”고 했다. 당근 앱을 닫은 뒤에야 어머니는 ‘진짜’ 요즘 애들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