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이맘때 새터(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난 서울대 전기공학부 동창들과 지금도 몇 달에 한 번 저녁을 함께 하며 안부를 묻곤 한다. 이 오래된 친구들의 직업은 변호사, 의사, 컨설턴트, 공기업 직원 등으로 다양하다. 워낙 많은 수가 탈(脫)공대를 선택해서다. 카카오톡 단톡방 멤버 10명 가운데 박사 학위를 딴 이는 두 명밖에 없다. 가끔 연락하는 다른 동창들도 다수가 의사나 변호사다. 신입생 대상 학과 설명회에서 한 교수님이 입학 성적 분포표를 보여주시며 같은 대학 의대와 비교해서도 신입생의 ‘질’이 꿀릴 게 없다고 말한 것을 떠올려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많은 이들이 전기공학부를 떠났던 이유는 결국 공학박사를 따서 무엇을 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대학교수나 기업 연구원이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느냐는 ‘수익’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진로를 고려하던 1990년대 후반에도 이미 의사의 급여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불확실성과 위험이 높다는 데 있었다. 의대 쏠림 현상이 점점 심화되는 원인은 의사라는 직업에만 있지 않다. 이공계 연구 인력의 노동시장 구조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박사 학위를 따고 대학이나 기업체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20~30대를 통째로 바쳐야 한다.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학부 과정 성적과 연구자로서의 성공은 별개다. 운이 아주 나쁘면 박사 과정 중간에 그만둬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몇 해 전 국내 한 대학에 임용된 한 친구의 경우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 학위를 따는 데 7년이 걸렸다. 그리고 미국 대학에서 리서치펠로(연구원)로 5년 넘게 근무하면서 연구 실적을 더 쌓고서야 현지 대학 교수가 됐다.
수익 차이도 크다. 연구·개발(R&D)이나 스타트업 창업 등은 이른바 ‘수퍼스타의 경제학’이 작동하는 분야다. 미국에서도 어느 대학에서 어떤 직위에 있느냐에 따른 보수 차이는 급격히 벌어지고 있다. 폴라 스테판 조지아대 교수는 1975~2006년 미국 남성 정교수 급여의 지니계수(불평등 측정 지표)가 0.314에서 0.424로 늘었다고 지적한다. 경제학에서는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빈부격차가 극히 높다고 본다.
불확실성과 위험을 벌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소득을 제공하는 일자리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 국내 노동시장에서 한국의 이공계 인력들이 갈 만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경우 해당 전공에서 갈 만한 대기업은 2~3곳 정도에 불과하다. 특정 기업에 평생 매여살면서, 기업의 성패에 자신의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IMF 외환 위기 구조조정을 목격한 세대에게 기업은 가급적 피해야 하는 선택지였다. 초거대 선도 기업과 나머지 기업 간의 생산성 격차가 벌어지면서 기업 연구원들도 어디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처우가 벌어지고 있지만, 그 초거대 기업은 대개 미국에 있었다.
다른 선진국처럼 과학기술과 지식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활성화되고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면 이공계 고급 인력의 일자리 여건은 훨씬 나았을 것이다. 또 이공계 인력들의 노동시장도 국내와 해외 간의 장벽이 낮아지면서 선택지가 늘어났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대학을 나온 이들이 영국의 ARM이나 딥마인드를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정부는 2000년대 초부터 이공계 기피 현상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산업과 노동시장 구조에서 이공계 진학이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연구실을 선택하길 원한다면, 그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미래 일자리 선택지를 늘리고 질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