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은 미모 때문에 큰 고초를 겪었다. 변 사또의 변태적 욕구에 저항하다 목숨이 간당간당했다. 춘향의 고향 전북 남원시는 매년 ‘전국 춘향 선발대회’를 개최해 ‘미스 춘향’을 뽑는다. 1950년 시작했으니 오래됐다. ‘춘향전’이 전근대 소설임을 감안하면, 춘향 정신을 부르짖는 이 대회의 성격도 전근대적일 수밖에 없다. 올해부터는 ‘외국인 춘향’도 뽑겠다고 한다. 글로벌 부문을 신설해 세계화를 꾀하겠다고 한다. 과거 조선족 수상자가 있긴 하나, 베트남 혹은 베네수엘라 춘향까지 나오게 된 셈이다.

미인 대회는 처지가 위태롭다. 젊은 여성을 한 줄로 세워놓고 점수 매기는 쌍팔년도 스타일도 더는 환영받지 못하거니와, 존재 자체가 여성 단체의 먹잇감이다. 세금 낭비 비판도 거세다. 한때 연예인 등용문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인스타그램에 미인이 더 넘쳐난다. 그러니 미인 대회 주최 측마다 혁신을 어필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아직 의미가 있다고, 현대적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고, 미(美)의 다양성을 보장한다고. 춘향의 변신은 그 일례처럼 보인다. 다만 한국 전통 미인상을 뽑는다는 이 행사에서, 외국인 심사는 난해할 것이 분명하다. 어떤 이유로 끼워맞춘들 ‘억지 춘향’이 될 공산이 크다.

명칭부터 적잖은 모순을 내재한 ‘영양 고추 아가씨 선발대회’는 올해부터 ‘아가씨’를 뗀다. 특산물 홍보의 오랜 관행이었으나, 여성계의 공격이 계속되자 경북 영양군 측은 ‘영양 고추 홍보 사절단’으로 이름을 바꿔버렸다. 경북 영천시 주최 ‘영천 포도 아가씨 선발 대회’는 2년 전 ‘영천 포도 피플 선발 대회’가 됐다. 무화과(전남 영암)·더덕(강원 횡성)·마늘(충북 단양)·인삼(경북 영주) 아가씨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소모적인 성 상품화 논란 반복에 지친 것이다.

“아름답다”는 본능적 감탄은 정치적 구호가 돼가고 있다.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는 주식 투자를 미인 대회에 빗대 설명한 적이 있다. 만약 당신이 심사위원(투자자)이라면 솔직한 끌림 대신 ‘다수의 견해’를 파악해 편승해야 안전하다는 것. 고로 미인 대회에서는 실제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 아니라, 분위기상 가장 많은 표가 쏠릴 만한 참가자가 승리한다는 것. 이 같은 ‘눈치 보기’는 미인의 양상을 바꿔 놓고 있다. 지난해 미스 네덜란드와 미스 포르투갈은 모두 트랜스젠더였고, 지난달에는 두 자녀를 둔 이란 이민자 출신 39세 여성이 ‘미스 독일’로 선정됐다. 옆집 아줌마처럼 푸근한 인상이었다. 외모 대신 책임감과 개성을 중시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한다. 그렇다면 이건 미인 대회인가, 의원 선거인가.

마음이 예뻐야 진짜 미인이라는 의견은 옳지만 난감하다. 그것은 심연에 있고, 관상까지 바꿔놓는 풀메이크업에서는 더더욱 확인하기 어렵다. 몇 개의 질문과 모범적 대답이 이를 보장할 리도 만무하다. 지난 1월 일본에서 ‘미스 재팬’ 대회가 열렸다. 내면·외면·행동의 아름다움을 평가했다고 한다. 귀화한 우크라이나 태생 백인(27)에게 그랑프리를 안겼다. 이 또한 변화 모색의 자구책이었을 것이다. 서구적 외모가 입방아에 오르자 이 여성은 “사람을 겉으로 판단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유부남과의 불륜 사실이 폭로돼 왕관을 반납했다.

무엇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냐는 철학적 논의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알 수도 없고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하는 요물이 됐다.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이걸 왜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