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온라인 교류를 하는 이들이 많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2년 전 북한 전역의 인터넷이 마비된 적이 있었다. 2022년 1월 26일, 북한 정부 공식 포털 ‘내나라’를 비롯해 외무성·노동신문·조선중앙통신·고려항공 등 주요 기관 사이트가 분산 서비스 거부(DDoS·디도스) 공격을 받아 장애가 발생했고 북한을 오가는 모든 인터넷 트래픽이 멈췄다. 영국의 한 정보기술(IT) 전문가는 로이터통신에 “북한의 IP 주소에 접근하려 했을 때 데이터를 북한으로 전송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고 했다. 일주일 넘게 지나서야 완전히 복구가 됐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미국인 해커 혼자서 북한의 인터넷을 먹통으로 만들었다는 게 미국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P4x’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던 이 해커는 지난 4일 미국 IT 전문 매체 와이어드에 얼굴과 본명을 드러내고 2년 전 있었던 북한 해킹 사건의 전말과 후일담을 전했다. 알레한드로 카세레스의 이야기는 ‘사적 복수’라는 네 글자로 압축할 수 있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북한 해커들은 김정은 정권의 지원을 받아 미국 사이버 보안 전문가와 해커들의 해킹용 소프트웨어를 훔치기 위한 해킹을 자주 시도한다. 사이버 보안 회사를 운영하던 카세레스도 공격 대상 중 하나였다. 북한 해커들을 막아내긴 했지만 그는 정권 차원에서 이뤄지는 사이버 공격을 정부에 알리기 위해 미 연방수사국(FBI)과 정부 사이버 보안 관계자들을 만났다. 공격 상황을 다 듣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정부에 실망한 카세레스는 혼자서 북한에 앙갚음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와이어드에 “만약 우리가 이를 드러내지 않으면 북한은 계속 (해킹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 개인이 국가 정권을 향해 감행한 복수가 성공했고, 아직까지 보복도 당하지 않았다. 만약 카세레스의 사적 복수를 한국 드라마로 만든다면 ‘사이다 복수극’으로 흥행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가장 화제가 됐던 드라마 ‘더글로리’는 학교 폭력 가해자에 대한 응징을 다뤘고, 사적 복수를 대행하는 조직이 등장한 드라마 ‘모범택시’도 인기에 힘입어 시즌2까지 제작됐다. 웹툰으로 이름을 알려 드라마까지 만들어진 ‘내 남편과 결혼해줘’도 전형적인 사적 복수극이다.
사이다의 맛이 어떤지 떠올려보자. 처음에는 혀끝을 톡 쏘는 듯 시원한데 몇 모금 마신 뒤에는 목구멍에 달짝지근한 맛이 들러붙어 오히려 갈증이 가시질 않는다. 사적 복수는 사이다의 시원한 첫맛보다는 썩 상쾌하지 않은 뒷맛과 더 닮았다. 더글로리의 문동은(송혜교)은 복수하기 위해 교사가 됐지만, 정작 그가 교사로서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한 적은 없다. 그가 복수에 골몰하는 동안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학교에선 제2 문동은과 제2의 박연진(임지연)은 계속 생겨나고 있었을 것이다. 사적 복수의 ‘사’(私)는 말 그대로 ‘공’(公)의 반대말이다.
사이다 복수극이란 같은 장르 안에서 카세레스는 문동은과 다른 결말로 향해가고 있다. 사적 복수를 완수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온라인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보안 시스템을 만들고자 나섰다. 그는 “러시아의 랜섬웨어 공격자들이 작년에 병원과 정부 기관을 마비시켜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이상을 갈취했고, 북한의 해커들은 작년에만 10억달러 상당의 암호 화폐를 훔쳐서 북한 정권의 금고에 돈을 넣었다”고 지적했다. 카세레스는 지난 2년간 미 정부와 국방부 관계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과 같은 해커로 구성된 사이버 안보 특공대를 조직해야 한다는 제안을 해왔다. 온라인 공격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 언론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사이버 보안 시스템은 변한 게 없어 사이다 같은 결말을 맺지 못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는 어렵겠지만, 이 복수의 엔딩은 부디 공적(公的)으로 통쾌하게 마무리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