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준의 남녀 골프 리그에 초강력 지배자가 각각 등장했다. “비현실적”이라고 선수들은 입을 모은다. PGA 투어 스코티 셰플러는 다섯 대회 중 준우승 한 번 빼고 네 번을 우승했다. LPGA 투어 넬리 코르다는 다섯 대회에 나가 몽땅 우승을 휩쓸었다. 일생에 한 번 우승해도 가문의 영광인데, 나갈 때마다 우승이라니. 게다가 그 기막힌 일이 양쪽에서 동시에 벌어진 것이다.
셰플러와 코르다의 경기는 대체로 엄청나게 짜릿하지는 않았다. 진기명기를 선보이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빈틈없이 착실했고 때론 단조로웠다. 실수가 자주 나오지 않고, 나와도 큰 무리 없이 만회했다. 일단 앞서나가면 좀처럼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4시간 넘도록 매번 다른 위치와 상황에서 수십번 스윙하며 집중력과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인가. 그 어려운 일을 둘은 너무나 쉬워 보이도록 해냈다.
어떻게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가. 질문이 쏟아져도 둘은 “눈앞의 샷에만 집중한다” 같은 밋밋한 답변을 내놓았다. 뻔한 얘기로만 여겼는데, 매주 우승 기록이 쌓여가니 곱씹어보게 됐다. 두 선수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건 ‘단순함’이었다. “목요일(1라운드)에 일요일(4라운드)을 생각하지 않는다.”(셰플러) “명예의 전당은 한 번도 목표로 삼아본 적이 없다.”(코르다)
우수한 선수에서 압도적 선수로 발전하기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코르다의 코치는 “단순함을 더한 것이 전부다. 더 효율적이고 정확해졌다”고 했다. “배를 떠올려 보자. 코르다는 필요 없는 건 무엇이든 배에서 던져 버렸다. 그 배는 지금 순항 중이다.” 코르다나 셰플러나 전에는 타고난 승부욕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코르다는 건강 문제, 셰플러는 퍼팅 난조를 겪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과도한 생각과 목표를 덜어내고 에너지를 집중하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코르다는 캐디와 코치, 트레이너, 에이전트, 가족 등이 각자 역할을 하는 시스템 안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해왔다. “매일 루틴을 지키는 것이 정신 건강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소문난 연습 벌레 셰플러 역시 “인내심을 갖고 멀리 내다보지 않는 방식으로 모든 대회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가 마스터스 우승 후 그린 재킷 차림으로 동네 작은 바를 찾아 단 20분간 머물렀던 사실은 화제가 됐다. 코르다 역시 동료와 햄버거, 감자튀김을 먹으며 우승을 잠시 자축했을 뿐이다.
스포츠 기자들은 ‘잘하는 사람(팀) 왜 잘하나, 못하는 사람(팀) 왜 못하나’ 분석을 주로 한다. 지금껏 수많은 선수와 감독에게 승리 비결을 숱하게 물었어도 속 시원히 만족스러운 답변을 들은 적은 거의 없었다. 상상도 못 할 만큼 선진적인 방식으로 훈련하거나, 매우 특이한 건강식이라도 먹는 게 아닌지 ‘추궁’해봐도 대체로 답변은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곰곰이 돌아본다.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나. 비범한 결과를 내는 인물이 반드시 일반인과 대단히 다른 뭔가를 하고 있을까. 탁월함의 조건은 ‘무엇을 하는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가’에 있을 때도 많았다.
국내 KLPGA 투어 15년 차 이정민은 첫 메이저 우승을 눈앞에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열심히 해보겠다”고 동료에게 말했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하라”는 동료 조언을 듣고는 얻어맞은 듯 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이정민은 셰플러 인터뷰를 찾아 읽은 뒤 경기에 나서 28일 압도적 우승을 차지했다. 지켜야 할 것을 구분하는 판단력, 버려야 할 것을 포기하는 용기,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갖출 때 단순함의 경지에 이른다. 단순하면 강하다. 단순해야 더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