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가장 논란이 되는 사안이 있다면 종합부동산세다. 고민정 의원 등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박찬대 원내대표도 대상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책실장을 맡았던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가 “억장이 무너진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상속세 완화론도 2~3년 전부터 민주당 안팎에서 조용히 세를 넓혀가다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이 총선 승리 후 지지 연합 내부의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감세 정책을 꺼내든 이유는 선명하다. 조국혁신당과의 ‘강남 좌파’ 쟁탈 경쟁이다. 서울의 총선 비례대표 동별 득표율을 보면, 조국혁신당이 더불어민주연합을 이긴 곳은 주택 가격이 비싼 곳이다. 9.7%포인트로 가장 크게 득표율 격차가 난 양천구 목5동이 대표적이다. 평창동(9.1%), 잠실2동(8.9%), 오륜동(8.4%), 반포본동(8.3%)같이 부촌에서 조국당은 민주당을 앞섰다. 표의 숫자 이상으로 발언력이 크고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한 강남 좌파를 조국당에 넘긴 상황은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보다 이 대표의 대선 가도에 더 위협적이다. 의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고 의원의 지역구(광진구 을)인 자양3동 등에는 고가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다. 황희(양천구 갑) 의원이 목동의 재건축 이슈가 일단락되자, 이제 상속세 문제를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부자 감세 논란에도 부담 없이 오른쪽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정부와 국민의힘이 국정 주도권을 쥐겠다며 더 화끈한 감세론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 드라마 ‘하우스오브카드’의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이 “선거를 앞둔 당은 인육을 먹는 사자에 쫓기는 여행객….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친구보다 빨리 달리는 것”이라고 말한 건 정당 간 경쟁이 상대적인 포지션의 싸움임을 잘 보여준다. 여당이 오른쪽으로 갈수록, 민주당은 무엇을 해도 중도 포지션에서 유권자를 확보할 수 있다. 향후 감세론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리스크가 적고 유리한 의제만 골라 입법하고, 정책 정당으로서 면모를 뽐내면 된다.
현재 감세 의제의 특징은 혜택을 받는 사람이 부자이고 보수 지지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종부세, 상속세뿐만 아니라 금융투자소득세도 그렇다. 특히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한국 평균 가계의 주식·채권·펀드 자산은 1682만원으로, 전체 자산의 3.2%에 불과하다. 최상위 10% 가구도 평균 9063만원(4.1%) 정도를 갖고 있다. 주식 매매 차익으로 세금을 내야 할 가계는 소수다. 대신 감세에 따른 재정 적자와 그에 따른 정부 지출 축소에 반대층은 넓다. 지난해 논란이 된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 삭감은 반발 기류에 놀란 대통령실이 원상 복구를 약속했다지만, 정부나 지자체가 사업을 줄이면서 소득이 줄었다는 가계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실 한국의 유권자들은 큰 정부에 대한 반발이 적다. 경제 전체에서 재정 지출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어났던 게 이를 잘 보여준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당시 종부세에 대한 반발이 광범위했던 건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침해했거나, 타인에 부과하는 세금도 거부감을 가져서가 아니다. 주택 정책 실패로 중산층의 주거 사다리를 무너뜨렸으면서 세금으로 해결하겠다는 적반하장격 태도 때문이었다. 감세 정치가 중도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 수 있으려면 다수의 유권자에게 분명한 혜택이 주어지고, 경기 활성화 등 긍정적 효과가 논리적으로 명확히 제시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선거 승리가 아니라 보수 결집을 통한 보신에 급급한 정책 의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