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개고기’를 생각하게 된 건, 말복 무렵 국회 앞 시위대의 외침을 듣고 나서다. 아스팔트마저 녹일 것 같은 땡볕 아래서 몇몇이 절규했다. “국민 자유권 강탈하는 개식용금지법 철회하라! 니들은 맨날 여의도에서 개짓거리하면서 왜 개는 못 먹게 하느냐, 이 개만도 못한 정치인들아!”
2024년 한국 사회가 개고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게임 회사 NC를 ‘개고기 식당’이라고 놀리는 게이머들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이 회사 대표작인 리니지 게임은 ‘외국인은 질색하고, 아저씨만 좋아하고, 청년들은 기피한다’는 이유로 온라인에서 개고기로 불린다. 이에 대해 NC 주주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검토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오늘날 개고기처럼 야만과 구태를 상징하는 단어는 없다. 아직 개를 먹는 사람들도, 조로아스터교를 능가하는 밀교 신자처럼 “혹시…너도…”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소리 없이 회동한다. “복날이니 개 먹으러 가자”고 떳떳하게 일어설 용자는 요즘 찾아보기 어렵다.
시간이 개고기 식당을 없애리라는 결말이 명확히 보이는데도 국회는 올 초 보기 드문 여야 합의로 개식용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개 연정(聯政)’이다. 식용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거나 사육·유통하면 3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 가능한 것이 이 법의 골자로, 2027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미국도 무소속으로 대선에 나오는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후보가 최근 ‘개를 먹은 적 있다’는 논란으로 홍역을 치를 만큼 개 먹는 사람을 사람 취급 안 하지만, 원주민들이 전통 의식 차원에서 개를 먹는 것은 합법이다. 한국도 실상은 ‘개저씨’ 부족만 개고기를 소비할 뿐인데, 대국민 공청회 한번 없이 먹을 자유를 징역형으로 제한하는 법이 일사천리로 생겼다.
그럴 연(然)은 ‘고기(肉)+개(犬)+불(灬)’이 결합한 한자어다. 개고기를 불에 굽는(구워 먹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으로, 우리가 밥 먹듯이 쓰는 자연(自然)이란 말에 개고기 냄새가 진동하고 있는 셈이다. 드릴 헌(獻) 자나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봐도, 혜경궁 홍씨 회갑연에 개고기찜(狗烝)을 별미로 올렸다는 기록과 다산 정약용이 남긴 ‘개고기 레시피’ 등을 봐도 동아시아에서 개고기는 역사의 일부였고, 앞으론 화석처럼 기억될 게 분명한 문화다. 그럼에도 국회가 육식에 관한 정밀한 토론도 없이 개식용금지법을 만든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을 반대하는 윤석열 정부가 육견 업계 보상금으로 마리당 30만원 지급을 검토하고,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윤 대통령이 이 법안엔 거부권을 안 쓴 것도 아이러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임대차법’의 실패가 보여주듯 입법은 극도로 정교하게 다뤄져야 한다. 한국 정치는 거꾸로 간다. 16대 국회에서 총 2507건이었던 법안 발의 수가 21대 국회에선 2만5858건으로 10배가량 늘었다. 개원한 지 겨우 세 달 된 이번 22대 국회도 발의된 법안이 벌써 3000건이 넘는다. 입법을 얼마나 쉽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일례다. 그러다 보니 ‘표적 수사 금지법’ ‘검찰 수사 조작금지법’ 등 헌법 체계를 뒤흔드는 법안들이 뻔뻔하게 추진된다.
정작 여의도만큼 개고기 냄새가 지독한 곳이 없다. 그러니까 양두구육(羊頭狗肉). 민생이란 양고기를 다루겠다고 약속하고 표 받아간 이들이 국회 들어가선 탄핵·특검·청문회로 연일 개고기처럼 싸운다. 잘 살게 해달라고 찍어준 표인데 한도 없는 권력을 허가받은 것처럼 날뛰는 광경을 보면서 복날 폭염 속 그 절규를 떠올린다. “이 개만도 못한 정치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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