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갑자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읽고 싶어졌다.

최근 미국 공립학교와 도서관에선 ‘금서(禁書)’ 전쟁이 격렬하다. 특히 플로리다주(州)의 학교에선 갖은 고전 명작 도서들도 서가에 오를 수 없게 됐다. 헤밍웨이의 ‘누구를…’이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도 목록에 있다. 책마다 금지된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는 플로리다에선 대체로 선정적이거나 동성애를 다룬 도서들이 교실 책장에서 빠지는 추세다.

이 중에서도 ‘누구를…’를 못 읽게 하려는 이유가 자못 궁금했다. 이 책은 파시스트와 나치 독일에 반대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미국인 남성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를 맡는 것으로 시작된다. 건전한 가치를 내세우는 공화당원들로선 이 주인공이 전쟁에 뛰어든 명분에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전쟁을 치르다 죽음을 맞는 주인공이 심기를 거슬렀을 것 같지도 않다.

선정성이 문제였을까. 책을 다시 찾아봤다. 성적 묘사가 없진 않다. “당신도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소?”라는 유명한 문장도 있다. 여성 주인공이 지나치게 수동적이라서 실소도 나왔다. 하지만 디지털 영상을 보며 자라온 2024년의 청소년들이 과연 이런 문학적 표현에서 ‘성애 묘사로 인한 성장 발달의 악영향’을 받을까. 오히려 요즘 아이들은 길고 고색창연한 작품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이 더 문제이진 않은가. 책은 영문판도 한국어 번역판도 모두 400페이지가 넘는다.

한국에서도 금서는 최근 논란거리였다. 작년 충남·충북에선 일부 도서를 도서관에서 퇴출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외국의 성교육 전문가가 썼다는 책 등이 대상이었다. 사람의 몸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이거나, 성별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책도 있었다. 이번에도 그러나 근본적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해당 책들이 논쟁적이라면 교과서에 안 싣거나 시험에만 안 내면 되는 것 아닌가? 굳이 금서로까지 지정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이 책들을 더 알리는 것은 아닌가?’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린이·청소년의 독서 수준은 이제 낮은 정도가 아니다. 미국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청소년의 20% 미만만이 즐거움을 위해 책이나 신문, 잡지를 읽는다고 했다. 반면 이들의 80%는 매일 소셜미디어를 한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2023년 초·중·고교 학생의 연간 독서량은 36권으로 2019년보다 5권 줄었다. 시험에 출제되지 않고 학교 숙제도 아닌 책을 읽는 경우는 그야말로 ‘0′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 책을 읽지 못하게 하자’고 말하는 게 무색할 정도로 아이들은 이미 책 자체를 읽지 않고 살고 있다.

금서 목록을 만들려는 이들은 결국 교실 아이들을 계도하는 실질적 효과보단 정치적 선언을 원한 듯하다.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다. 격변하는 세상에서 내 아이를 지키고 싶은 부모 맘은 좌우를 떠나 비슷하니까. 동성애나 성적 묘사를 아예 읽지 못하게 하려는 부모가 있다면, 반대편에선 동성애 혐오나 인종차별을 담은 책을 치우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다.

문제는 지금 이런 식의 금서 운동이 과연 효과적이냐는 것이다. 아이들은 종이책 자체에서 아예 멀어지고 있는데, 학부모 단체와 정치권에서만 ‘이 책을 교실에서 빼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좋은 교육을 하는 것이 애초의 진짜 목적이었다면, ‘이 책을 없애자’고 말하기 전에 ‘이런 책부터 잘 읽히자’라고 말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지금 전 세계 우리 모두에게 ‘금서 전쟁’보다 시급한 건 ‘양서(良書) 읽히기 전쟁’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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