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2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영업준비를 하는 모습. /뉴시스

부모님은 2000년 처음 식당을 여셨다. IMF 외환 위기 직전 아버지 사업이 부도 나면서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다가 지인 소개로 얻은 가게였다. 가게를 얻으며 한동안 얹혀살았던 외할머니 댁에서도 독립했다. 막 40대가 된 부모님은 테이블 대여섯 개 놓인 작은 백반집에서 새출발을 다짐했다. 재기를 위해, 그리고 두 형제를 먹이고 입히기 위해 식당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었다. 저녁 장사를 마치고 늦은 밤 귀가한 부모님의 옷에선 늘 김치 냄새와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두 분은 그 냄새를 다 털어낼 새도 없이 곯아떨어지곤 했다.

자영업은 세상의 온갖 파도를 회사라는 방파제 없이 직접 맞닥뜨리는 직업이다. 배추 파동이든 돼지 구제역이든 무슨 일만 생기면 폭등하는 물가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고, 손님한테 갑질을 당해도 하소연할 데 하나 없다.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같은 건 그림의 떡이다. 쉬는 만큼 매출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1872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1742시간)보다 130시간가량 길었다. 노동시간은 대체로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작년 말 공개한 보고서에서 “전체 취업자에서 자영업자의 비중이 1%p 증가할 때마다 그 국가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10시간 내외 증가한다”고 밝혔다. 근면 성실함, 다르게 말하면 자기 인생을 갈아 넣는 고된 노동이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생존 비결’인 셈이다.

부모님도 20년 넘는 세월 동안 주 6일을 식당에서 보냈다. 취미라곤 밤에 잠깐 보는 텔레비전이 전부였다. 어느덧 환갑을 넘은 부모님 앞에 놓인 건 준비되지 않은 여생. 아버지는 ‘노후에 안정적으로 먹고살 아이템’으로 해장국집을 새로 차리셨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메뉴를 개발했다. 실내 공사도 직접 손봤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처참하게 망했다. 오는 사람마다 “맛있다”고는 했지만 애초에 방문객이 거의 없었다. 포털사이트 등록을 도와드리고 친구들을 동원해 리뷰를 남기기도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기본적으로 부모님이 그런 기술들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나마 벌어 놓은 돈도 까먹고 사업을 정리하면서 아버지가 얻은 교훈은 “이제 식당도 젊은 사람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요즘 요식업은 음식만 잘 만들어 판다고 되는 게 아니다. 우선 인테리어를 ‘인스타그램용 사진’이 잘 나오게 해야 한다. 포털사이트나 배달앱에 뜨는 사진과 정보를 ‘있어 보이게’ 등록해야 하고, 홍보를 위해선 각종 SNS도 섭렵해야 한다. 온라인 예약 접수, 리뷰 관리는 필수다. 일련의 과정들이 조금만 허술하거나 지체돼도 고객들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다. 일부 협회나 시설들이 이런 데에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해 마케팅 교육 같은 걸 실시하기도 하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 육십 줄의 자영업자들에게는 그런 걸 배운다는 것 자체가 높은 허들이다.

요식업은 은퇴자들에게 거의 유일한 호구지책이었다. 별다른 기술 없이 진입할 수 있는 영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은퇴 후에 치킨집이나 차리겠다”는 말도 옛말이다. 평범하게 튀기고 팔아선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평생 다른 일을 해온 사람이 섣불리 뛰어들었다간 퇴직금만 날리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1만 개에 달한다. 은퇴자들의 노후를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방관해 온 결과다. 수많은 베이비붐 세대가 줄줄이 은퇴하고 있다. 더 이상 이들의 ‘인생 이모작’을 각자도생에 맡겨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백세 시대에 대비한다는 건 이들이 활약할 공간을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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