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연합뉴스

두 달 전, 한 로보어드바이저(인공지능 투자 자문 서비스) 스타트업에서 인공지능(AI) 모델 개발을 이끈 동갑내기를 인터뷰했다. 카이스트 수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프린스턴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가 시작한 수학 유튜브의 구독자는 20만명이 넘었다. 그의 유튜브와 다른 수학 유튜브도 몇 개를 들여다봤더니 알고리즘이 나를 대치동 수학 학원 강사들의 동영상으로 이끌었다.

대치동 수학 강사 유튜브에선 ‘O소수학’이란 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30년 전 수학 참고서에 ‘해법’ ‘천재’ ‘A급’ 같은 이름이 붙었는데 요샌 가축이나 동물 이름을 붙이는 것이 유행인가. 중학생 아이를 둔 지인에게 물어보니 초등학생들이 가는 유명한 수학 학원이란다. 네이버에 ‘O소수학’을 검색해보니 ‘O소수학 입테 과외’, ‘O소수학 입테 학원’ 관련 게시물이 주르르 줄을 섰다. ‘입테’란 입학 테스트의 줄임말이다. 영재고 입학도 아니고, 서울대나 의대 입학도 아니고 초등학생이 수학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또 다른 수학 학원을 다니고 수학 과외를 받아야 한다. 수학 실력이 최상위권이어야 입테에 합격을 할 수 있고, 학원 내에서도 성적에 따라 반을 나누기 때문에 학원을 계속 다니기 위해서 과외나 다른 학원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입테 탈락자들은 결원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편입’ 준비도 한다. 애당초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으니, 이런 학원의 실적이 안 좋을 리가 없다.

유튜브와 네이버에서 O소수학에 대한 검색을 거듭하다 보니 3세부터 다닐 수 있는 수학 학원이 있고, 일부 부모들 사이에선 3세부터 7세까지 매년 수학 커리큘럼을 계획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기야 ‘명문’ 영어 유치원과 영어 학원을 가기 위해 각각 네 살, 일곱 살 때부터 사교육을 받는 ‘4세 고시’와 ‘7세 고시’도 있는데, 수학이라고 영어에 질 순 없다.

수학은 중요하다. 챗GPT가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수준의 수학 문제 풀이 능력을 갖춘 마당에, 수학 공부가 무슨 쓸데가 있냐는 반문이 있겠지만 AI 시대라서 수학은 더 중요하다. 이달 초 영국 런던 왕립학회는 AI 시대를 맞아 중·고등학생의 수학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왕립학회는 “수학과 데이터 독해 능력은 일상생활의 필수가 됐지만, 많은 국민이 수학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수백만 명이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없고, 고소득 일자리에서 배제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수학 전공자가 아니어도, AI 시대에 인간답게 먹고살려면 수학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다.

4세, 7세 고시에 합격하고 O소수학에 입성하면 AI 시대에 걸맞은 인재가 될 수 있을까. 수학 박사 출신 AI 개발자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그에게 O소수학에 다니면 수학을 잘할 수 있을지 물었다. 수학 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그는 “확실히 수학 시험을 잘 보게 할 순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그런 방식으로 수학을 공부하면 수학에 대한 흥미나 열의가 고등학교, 혹은 그 이후까지 이어질지 의문이에요. 한국 고등학생들의 평균 수학 실력은 세계 상위권이고 IMO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보이지만, 대학 이후엔 수학적 성취가 오히려 낮은 편이거든요.”

수포자(수학 포기자)를 양산할 정도로 재미없는 수학. 수학 학원 하나도 모자라 학원을 위한 학원과 과외를 겹겹이 다녀야 시험을 잘 볼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수학. AI를 이해하고 데이터를 읽어낼 줄 알아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미래에 수학이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잡아야 할까. 이 많은 죄를 어찌 수학에 물을까. 수학 교육의 쓸모를 고민하고 수학 교육 방식을 다시 뜯어볼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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